청화백자의 탄생
서아시아인들은 전통적으로 푸른색을 좋아했다고 해. 그들이 사는 곳이 건조지대라 물이 귀했기 때문에 푸른색을 좋아했다는 거야. 그래서 물건에도 푸른색을 많이 사용했다는구나. 예를 들면 도기를 만들 때도 푸른색 안료를 사용했어. 모스크 건축에 필요한 타일도 푸른색 안료를 써서 만들었지. 터키의 이스탄불에는 1600년대 초에 만든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라는 이슬람 사원이 있는데, 모스크 안쪽 벽을 푸른색 타일로 장식해서 ‘블루모스크’라 부르기도 해. 건조지대의 한가운데에 이런 모스크가 있으니, 사람들은 마치 오아시스처럼 느끼지 않았을까?

서아시아인들이 사용해 온 이 푸른색 안료의 정체는 ‘코발트’(원자번호 27번)야. 코발트는 1300도에 가까워질 때 가장 아름다운 빛깔을 내는 성질이 있어. 그런데 서아시아의 도자기는 불의 온도를 800도까지밖에 끌어올리지 못해 도기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코발트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어. 하지만 코발트가 중국의 백자와 결합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거지. 
서아시아인들이 코발트를 사용할 수 있었던 건,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란에서 많이 생산되었기 때문이야. 만약 중국에도 매장되어 있었다면, 중국 도공들이 그 좋은 걸 가만 놔두지 않았겠지. 무슬림 상인들이 떠올린 아이디어는 바로, 중국의 기술과 서아시아의 코발트를 결합시키는 거야. 서아시아인들은 어떤 무늬를 원했을까? 여기에서 우리는 그들이 믿었던 이슬람교의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어. 이슬람교에서는 우상 숭배를 금지하고 있어. 그래서 어떤 물건을 장식할 때 사람이나 동물을 넣을 수 없게 되어 있지. 반면에 식물 무늬는 오케이! 특히 서아시아인들은 이슬람교가 등장하기 전부터 식물 문양을 좋아했어. 꽃과 나무가 귀한 지역이라서 말이야. 특히 건조지대에서 주로 재배되는 포도 무늬가 인기를 끌었다는구나. 무슬림 상인들은 서아시아에서 생산한 금속 세공품이나 양탄자, 직물 같은 것을 가져와 중국 도공에게 보여 주었어.
“여기에 새겨져 있는 식물 문양을 자기에 똑같이 그려 주시오.” 
무슬림들은 밥을 먹을 때 큰 그릇에 음식을 담아 여러 사람들이 둘러앉아 함께 먹는 풍습이 있었다고 해. 그래서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자기를 주로 주문했지.
이렇게 해서 서아시아 맞춤형 자기가 탄생했어. 역사상 최초의 청화백자였지.

 

 

예민한 도자기의 기발한 운반법
청화백자는 서아시아로 어떻게 운송되었을까? 그림을 보자. 수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가고 있어. 나귀를 탄 사람도 있고 걷는 사람도 있네. 가장 먼저 왼쪽 아래의 수레로 눈이 가는구나. 바퀴 모양이 특이해. 가운데에 두 개의 큰 바퀴가 있고, 앞뒤로 작은 바퀴 네 개가 받치고 있는 모습이야. 수레에 도자기들이 실려 있는데, 흰색 바탕에 푸른색 문양이 그려진 도자기가 보여. 청화백자야! 손에 들고 가는 사람 것까지 해서 모두 다섯 점이네. 학자들은 이 그림에 대해 시집을 보내는 일행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해석하고 있어. 오른쪽 끝에 나귀를 탄 여인이 신부인데, 중국 여인인 것 같아. 이 여인은 어디로 시집을 가고 있을까? 그림에 보이는 다양한 물건들은 결혼 예물인 것 같은데, 청화백자가 포함되어 있는 걸 봐서는 서역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 이 그림은 터키의 한 궁전에 벽화의 형태로 남아 있으니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렇다면 이 신부 일행은 꽤 먼 거리를 이동하고 있었던 셈인데, 도자기를 수레에 실은 모습이 너무 허술해 보이지 않아? 길을 보면 포장이 잘 된 도로 같지 않고, 설사 포장도로라 하더라도 가는 길에 파손되기 십상 아닐까? 아마도 실제 모습을 보고 그린 건 아닐 거야. 청화백자가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는데, 청화백자를 강조하고 싶어서 이런 식으로 그렸겠지.

도자기를 운반할 때는 보통 대량으로 해야 하니까 겹쳐 쌓았는데, 도자기와 도자기 사이에 진흙을 발랐다고 해. 실크로드를 이용하면 주로 건조한 사막을 건너는 시간이 많으니까 그 진흙이 살짝 굳으면서 충격을 흡수할 수 있어. 목적지에 도착하면 진흙을 물에 풀어 도자기를 분리해 내지. 해로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도자기 사이에 볍씨를 채워 넣었다고 해. 바다가 습하니까 싹이 나고 줄기도 나고 뿌리도 나고 해서 ‘뽁뽁이’ 역할을 하는 거지.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 새로운 자기를 창조하다
청화백자의 탄생에는 몽골인의 역할도 컸어. 몽골의 지배자들은 도공들이 마음껏 만들 수 있게 허용했어. 도공들은 다양한 형태와 무늬를 시도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새로운 자기의 창조로 이어진 거야. 몽골의 지배자들이 이렇게 한 건, 자신들에게도 유리했기 때문이야. 나라의 수입을 늘릴 절호의 기회! 몽골 조정은 자기 생산을 감독하기 위한 관청을 설치했어. 도공들에게 청화백자를 마음껏 생산할 수 있게 해 주는 대신, 자기에 세금을 부과해서 나라의 수입을 늘렸지. 청화백자를 구입하는 무슬림 상인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말이야. 
청화백자는 서아시아 사람들을 위한 상품이었지만, 몽골의 지배층이나 중국 부유층들도 좋아했어. 푸른색 그림이 들어간 청화백자는 이국적인 매력을 느끼게 해 주었지. 
그럼, 앞에서 살펴본 데이비드 꽃병은 서아시아 수출용이었을까, 중국 내수용이었을까? 꽃병에 쓰여 있는 설명을 보아서 알겠지만, 같은 중국인에게 주기 위해 제작된 거야. 하지만 그 설명이 없더라도 이 꽃병은 중국인을 위한 거라는 걸 눈치 챌 수 있어. 힌트는 용 그림이야. 무슬림은 동물 문양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것이었다면 용을 그리지 않았겠지. 
데이비드 꽃병에는 중국이나 우리나라 자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용과 구름 그림에 무슬림이 좋아하는 식물 문양이 함께 그려져 있어. 중국과 서아시아라는 서로 다른 문화가 융합되어 세계인이 다함께 좋아하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했다는 걸 이 청화백자가 입증해 보여 주고 있지.

/자료 제공=‘세계사를 담은 도자기 이야기’(강창훈 지음ㆍ웃는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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