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가 모두 일곱 점이야. 윗 줄 맨 오른쪽에 있는, 가장 커서 눈에 확 띄는 이 병은 ‘매병’이라고 해. ‘매화 매(梅)’ 자에 꽃병, 물병 할 때의 ‘병(甁)’을 합친 말이야. 그럼, 매화를 꽂아 두는 병이었느냐고? 아니야, 주로 술을 담는 술병이야. 그런데 왜 매병이라고 부를까? 병에 든 술을 다 마신 뒤에, 다음 술 담을 시기가 올 때까지 매화 가지를 꽂아 두었기 때문이라는데, 확실한 건 아니야. 다른 액체를 담을 때도 사용했다는구나. 
앞줄에는 동물 모습을 한 도자기도 있어. 장난감일까? 아님 장식품? 이건 연적이라는 물건이야. 벼루에 먹을 갈 때 쓰는 물을 담는 그릇이지. 윗 줄 중간에 있는, 옆으로 구멍이 뻥 뚫린 직육면체 가까운 도자기, 이건 딱 봐도 베개야. 잔 받침이 두 쌍 있고, 국을 담았을 것 같은 그릇도 보이는구나. 가장 이상한 건 뚜껑이야. 몸통은 어디 가고 뚜껑만 남아 있네?

이 일곱 점의 도자기는 공통점이 하나 있어. 모두 ‘자기’라는 거야. 그것도 고려시대 사람들이 직접 만든 자기. 앞에서 도기와 자기의 차이에 대해 말한 적 있어. 자기를 처음 만든 건 중국인이라고 했지. 그런데 고려 사람들도 언제부턴가 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거야! 중국이 자기를 처음 만든 것은 2~3세기경 후한시대인데, 우리나라는 10세기 후반쯤에 자기 생산에 성공했어. 중국보다 700~800년쯤 늦었지만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자기 생산국이 되었지.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자기들은 중국에서 제작되어 바다 건너 우리 땅에 온 것이지만, 이 일곱 점은 우리 땅에서 생산된 거야.
고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화 중 하나가 바로 ‘고려청자’ 아닐까? 청자도 자기의 일종이야. 푸른 빛깔의 자기. 이 일곱 점 모두 고려청자야.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어. 매병, 잔 받침, 국그릇은 음식을 담는 것이지만, 여기에 베개와 연적이 함께 있으니 참 어색하지 않아? 게다가 무슨 그릇의 짝인지 알 수 없는 뚜껑까지. 서로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청자들이 한곳에 모여 있으니 이상하지? 그렇다면 발견 장소는? 놀라지 마! 무령왕릉 같은 무덤이 아니라 바다 속이야! 
지금부터 40여 년 전인 1976년. 전라남도 신안군 앞바다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졌어. 바다 속에서 길이 34미터짜리 대형 선박이 발견된 거야. 발견 장소 이름을 따서 ‘신안선’이라고 부르지. 조사 결과가 나오자 세계 고고학계가 들썩였어. 약 700년 전인 1323년에 침몰한 배였던 거야! 일곱 점의 고려청자는 바로 이 배 안에서 발견되었어.

신안선에서 발굴한 도자기들 ⓒ Wikimedia Commons
신안선에서 발굴한 도자기들 ⓒ Wikimedia Commons

 

신안선은 어느 나라 배였을까? 우리나라의 서해에서 발견되었고 고려청자도 나왔으니, 당연히 우리나라 배 아니었을까? 시간을 헤아려보면 그때가 고려시대(918~1392)였으니 당연히 고려의 배일 것 같아. 사실 신안선에서 발견된 것은 고려청자 일곱 점이 다가 아니야. 놀라지 마. 도자기 2만여 점과 목재, 중국의 동전 등 무려 2만 5000점이 넘는 물품이 함께 발견되었어. 이들은 모두 나무상자에 차곡차곡 담긴 채 배에 실려 있었지. 신안선은 무역선이었던 거야.
글을 적은 나뭇조각 목간도 400개 가까이 발견되었어. 받을 사람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었지. 택배 상자에 붙은 주소 용지처럼 말이야. 그런데 여기에 적힌 것은 일본의 여러 지역 이름, 일본 사람의 이름들이었어. 그렇다면 신안선의 종착지는 일본이었겠구나!

신안선에서 발굴한 목간들 ⓒ 국립중앙박물관
신안선에서 발굴한 목간들 ⓒ 국립중앙박물관

 

그럼, 출발지는 어디일까? 목간들에는 물품을 배에 실은 날짜와 함께 출발지 이름도 적혀 있었는데, 모두 중국의 항구 도시 이름들이었어. 신안선은 중국에서 출항한 배였구나! 목간들 말고도 신안선이 중국에서 출발한 배라는 증거는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아. 이 배에서 발견된 2만 점이 넘는 도자기는 모두 중국에서 생산된 거거든! 고려청자 일곱 점을 제외하고는 말이지.
이 배가 출항한 시기는 1323년 6월쯤이야. 우리나라는 고려, 중국은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가 지배하던 때지. 그러니까 신안선은 원나라 국적의 배인데, 원나라의 항구 도시를 출발해서 일본으로 가던 도중 우리나라의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거야. 
그렇다면 원나라와 일본을 왕래하는 무역선에 고려청자가 실려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전에 고려청자의 역사부터 살펴보자.


/자료 제공=‘세계사를 담은 도자기 이야기’(강창훈 지음ㆍ웃는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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