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신도 극찬한 고려청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자기 생산국이 되었지만, 중국보다 700~800년이나 늦었어. 그러나 고려의 도공들은 백여 년 만에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어.
1123년 송나라 사신이 고려를 찾아왔어. 서긍이라는 사람인데, 한 달 동안 고려에 머물다가 귀국한 뒤 황제에게 올릴 보고서를 작성했지. <<고려도경>>이라는 책인데, 특히 흥미로운 건 그림도 함께 들어 있다는 거야.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고려청자에 대해서도 한마디 남겼어. 
“이와 같이 빛깔이 푸른 것을 고려인은 비색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중국 송나라 최고의 청자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극찬을 했지. 서긍은 자기가 직접 본 청자 한 점에 대해서도 기록을 남겼는데, 그 내용이 무척 놀라워. 
“산예출향도 비색이다. 위에는 짐승이 웅크리고 있고, 아래에는 연꽃무늬가 떠받치고 있다. 여러 그릇 중 가장 정교하고 빼어나다.”
산예출향은 ‘사자가 장식된 향로’라는 뜻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남아 있는 <<고려도경>에는 그림이 하나도 없어. 송나라가 전쟁 중일 때 불에 타 사라졌거든. 그림을 볼 순 없지
만 글은 볼 수가 있어. 다만, 서긍이 본 것과 비슷한 청자가 남아 있어. ‘청자 사자 장식 뚜껑 향로’인데,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지. 

중국에서 일본으로 가던 배가 왜 신안 앞바다에?
다시 신안선으로 돌아가서, 여러 기록과 유물을 토대로 신안선의 항로를 추적해 보자. 
1323년 4월, 중국 복건성의 천주라는 항구 도시에서 한 척의 무역선이 출항을 했어. 천주는 당시 중국 최대의 무역항이야. 이 무역선은 천주를 떠나기 전에 목재와 동전들을 잔뜩 실었어. 일본의 불교 사찰에서 주문한 것들이야. 천주를 출발한 무역선은 중국 동남해안을 따라 올라가며 항구 도시 몇 곳에 들러 자기를 비롯한 여러 물품들을 추가로 실었어. 6월 초쯤 명주(지금의 닝보)라는 항구 도시에서 드디어 일본을 향해 항해를 시작했지. 그러다가 신안 앞바다에 이르렀을 무렵 침몰하고 만 거야. 

▲신안선 해로
▲신안선 해로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어. 중국 명주에서 출발한 배가 일본까지 일직선으로 쭉 항해했을 텐데, 왜 엉뚱하게 신안 앞바다까지 가서 침몰한 거지? 당시 신안선은 명주에서 일본으로 일직선으로 가는 해로를 이용하지 않았어. 한반도의 남해안을 거쳐 가는 해로를 이용했지.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6~7월의 해류와 편서풍을 감안하면 동북 방향으로 항해해야 순풍을 받기가 좋았다는구나. 그리고 그곳 섬 지역에 도착하면 물을 공급받고 선원들을 잠시 쉬게 할 수도 있었겠지. 그럼, 고려청자 일곱 점은 어떻게 신안선에 실리게 된 걸까?

중국 무역선에 고려청자가 실린 까닭
서긍이 송나라에 돌아와 책을 통해 고려청자를 극찬한 이후, 중국 황제를 비롯해서 상류층 사람들 사이에 고려청자의 인지도가 높아졌어. 그리고 서긍처럼 고려를 다녀오는 사신이나 고려에서 오는 사신이 가져온 것을 통해 고려청자의 실물이 알려지면서 크게 인기를 끌었지.

청자 사자 장식 뚜껑 향로 ⓒ 국립중앙박물관
청자 사자 장식 뚜껑 향로 ⓒ 국립중앙박물관

한편, 송나라는 몽골의 침입을 받아 남쪽의 항주라는 도시로 수도를 옮겼어. 이후에도 고려청자를 계속해서 수입했지. 당시 송나라와 고려의 교역이 가장 활발했던 도시가 바로 명주야. 최근 이 지역에서 ‘궁전’이나 ‘귀비’라는 글자가 새겨진 고려청자 파편이 발견되었다는구나. 고려청자가 황실과 상류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지. 송나라가 멸망하고 원나라가 중국을 차지한 뒤에도 고려청자의 인기는 식지 않았어. 이들 가운데 일부가 일본으로 향하는 신안선에 실린 거야.
그렇다면 왜 일곱 점뿐이었을까? 어쩌면 청자들을 배에 실을 때 중국산인지 고려산인지 따지지 않고 그냥 실었을 수도 있어. 둘 다 중국산으로 보였을지도 모르니까. 다른 가능성도 있어. 신안선에서 발견된 고려산 물품은 고려청자만이 아니었어. 청동 숟가락과 밥그릇도 나왔는데, 이건 배에 타고 있던 고려인이 사용하던 거야. 그렇다면 일곱 점의 고려청자는 무역품이 아니라 고려인의 개인 물품이었을 수도 있어. 
어쨌든 고려에서 생산된 고려청자가 원나라에 갔다가 일본으로 가는 무역선을 타고 가는 도중에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했고, 최근에 발견되어 우리나라로 돌아왔어. 65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셈이지. 그 까닭이나 과정을 짐작하고 공부하는 것은 후대 사람들의 몫이야.

/자료 제공=‘세계사를 담은 도자기 이야기’(강창훈 지음ㆍ웃는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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