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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쭉하게 생긴 도자기야. 절에 흔히 있는 탑처럼 생겼어. 아래가 직사각형의 기단부이고, 맨 위를 상륜부라고 보면, 가운데가 탑신부인 셈인데, 대개의 탑이 그렇듯이 올라갈수록 피라미드처럼 점점 좁아져. 닮은꼴의 계단이 모두 아홉 개이니 9층탑이라고 해야 할까? 기단부의 아래에 사자처럼 생긴 동물 네 마리가 탑을 떠받치고 있고, 기단부와 탑신부 사이에는 사람 머리를 한 동물들이 끼어 있구나. 흰색 바탕에 푸른색 그림이 가득 그려져 있어. 기단부와 탑신부 곳곳에 중국의 전통 가옥과 중국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사이사이에 다양한 식물 무늬들이 있어. 상륜부에는 사람인지 동물인지 상반신만 붙어 있어. 
이 도자기는 어떤 용도로 만든 걸까? 힌트는 탑신부에 있어. 아홉 개 층의 각 모서리에 짧은 대롱이 위를 향해 솟아 있는데, 사람의 얼굴이 붙어 있어서인지 입처럼 보여. 4 곱하기 9 해서 모두 36개인데, 입을 왜 이렇게 우스꽝스런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걸까? 이건 꽃을 꽂아 두는 용도로 만든 거야. ‘자기로 만든 화분’이란 뜻으로 ‘화반’이라고도 하는데, 모양이 피라미드나 탑 모양이니 ‘화탑’이라고 이름 지어도 좋겠구나. 36개의 구멍에 꽃 달린 줄기를 하나씩 꽂아 두면 꽃들이 화반을 감싸 제법 아름다운 모습일 것 같네.
흰색 바탕에 푸른색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림 내용이 중국적이고 식물 무늬까지 있는 걸 보면, 앞서 본 데이비드 꽃병처럼 중국에서 만든 청화백자처럼 보여.

유럽의 중국 도자기 열풍
지금부터는 무슬림이 주문하고 중국 도공이 만든 청화백자가 서아시아와 중국에서 인기를 끌 무렵, 유럽의 상황은 어땠는지 살펴보자.
먼 옛날에는 유럽인이 중국과 직접 교류하는 일이 무척 드물었어. 몽골제국 시대부터 유럽인이 중국에 가는 경우가 종종 생겼지. 가장 먼저 마르코 폴로가 떠오르는데, 그가 쓴 <<동방견문록>에 중국 도자기에 관한 기록이 있어. 
“한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에서는 자기 밥그릇과 접시가 만들어졌으며, 현지인들은 특수한 점토를 채취하여 (…) 그것을 사용하여 밥그릇을 만들고 원하는 색을 칠한 후 가마에 넣고 굽는다. 마을에는 큰 시장이 있어 자기 그릇이 팔린다.”
<<동방견문록>은 유럽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니, 수많은 유럽인이 이 책을 통해 중국 자기에 대한 정보를 접했을 거야. 당시 유럽은 자기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서아시아를 통해 중국 자기를 조금씩 수입했는데, 수량이 적고 가격이 워낙 비싸서 극소수의 지배층이나 부유층만 가질 수 있었어. 자기 한 점을 사려면 노예 몇 명을 팔아야 한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야.
그러니 유럽 상인들은 서아시아를 거치지 않고 직접 자기를 수입하고 싶어졌을 거야. 물론 직접 수입하고 싶은 것이 중국 자기만은 아니었어. 중국 비단도 있고, 인도 향신료도 있었지. 게다가 아시아에는 금은보화가 넘쳐난다는 소문이 파다했어. 수많은 모험가들이 인도와 중국으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기 시작했어. 선두주자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야. 이후 약 백 년 동안은 두 나라가 유럽의 아시아 무역을 이끌게 돼. 특히 포르투갈이 중국과의 도자기 교역에서 가장 앞서 있었지. 그런데 얼마 뒤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났어. 바로 네덜란드야. 

1603년, 유럽 도자기 역사에서 오래 기억될 무척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어. 포르투갈의 산타카타리나 호가 60톤에 이르는 도자기 약 10만 점을 싣고 항해를 했는데, 동남아시아의 말라카해협에서 잠시 정박하는 사이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상선이 나타나 이 배를 사로잡은 거야. 이 와중에 산타카타리나 호에 불이 나서 수많은 화물이 파손되었지만, 파손을 피한 것도 꽤 많았던 모양이야. 네덜란드 상선은 이 화물들을 싣고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와 유럽 상인들을 모아 놓고 경매를 했어. 그렇게 해서 수많은 중국 도자기가 한꺼번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지. 이후 유럽 여러 나라에서 자기 수요가 늘어났어. 매년 10만 점이 넘게 네덜란드로 들어왔고, 17세기 전반이 되면 무려 300만 점의 자기를 수입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그 양이 엄청났지. 네덜란드를 통해 유럽 여러 나라로 퍼진 중국 자기는, 물론 아무나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어. 당시 중국과 일본 자기는 값이 무척 비싸서 왕실이나 귀족, 일부 부유층만 가질 수 있었지. 그들은 오랜 옛날부터 중국 자기를 원했어. 서아시아를 통해 가끔 몇 점씩 들어오는 것이 전부여서 늘 갈증이 컸을 거야. 그런데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 한꺼번에 엄청난 양의 중국 자기가 유럽으로 들어왔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유럽의 왕이나 귀족들은 중국 자기를 사서 방을 꾸몄고, ‘도자기의 방’이라고 부르곤 했지. 특히 그들을 매혹한 건 푸른색 그림의 백색자기, 바로 청화백자였어. 네덜란드 상인이 중국 자기를 가져와 암스테르담에서 경매를 한다는 소식에 유럽인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어. 주로는 이 자기들을 좋은 값에 사서 왕실이나 귀족층에 비싸게 팔 궁리를 하는 상인들이 많았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
<사진 설명>
스톡홀름 할빌 박물관의 ‘도자기의 방’ ⓒ Wikimedia Commons
/자료 제공=‘세계사를 담은 도자기 이야기’(강창훈 지음ㆍ웃는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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