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트: ① 나는 제주도에서만 서식하는 우리나라 고유종 사슴벌레야.② 몸집은 12~16㎜로 매우 작고 턱에 작은 뿔이 있어.③ 성충은 주로 썩은 팽나무 안에 굴을 파고 생활하며 집단으로 월동해./벅스리움(bugsrium.siheung.go.kr) 제공
새 학기를 맞아 경기도 시흥의 곤충전시체험관 ‘벅스리움’과 함께 곤충 이름을 알아맞히는 코너를 월 2회 마련합니다. 정답은 e-메일([email protected]) 또는 우편(주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5길 58 석탄회관빌딩 2층 소년한국일보 편집국 퀴즈 담당자 앞, 우편번호 03151)으로 이달 18일까지 보내 주세요. 이때 집 주소와 학교, 학년, 전화번호를 꼭 적어야 합니다. 정답자 가운데 추첨을 통해 3명에게 벅스리움 가족 초대권(2명)과 치유 곤충 사육세트(1명)를 선물합니다. 많은 응모 바랍니다. ▶힌트① 나는 남방계나
새 학기를 맞아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곤충전시체험관 ‘벅스리움’과 함께 곤충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코너를 월 2회 마련합니다. 정답은 e-메일([email protected]) 또는 우편(주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5길 58 석탄회관빌딩 2층 소년한국일보 편집국 퀴즈 담당자 앞, 우편번호 03151)으로 이달 27일까지 보내 주세요. 이때 집 주소와 학교, 학년, 전화번호를 꼭 적어야 합니다. 정답자 가운데 추첨을 통해 3명에게 벅스리움 가족 초대권(2명)과 치유 곤충 사육세트(1명)를 선물합니다. 많은 응모 바랍니다. ▷힌트① 나의
새 학기를 맞아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곤충전시체험관 ‘벅스리움’과 함께 곤충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코너를 월 2회 마련합니다. 정답은 e-메일([email protected]) 또는 우편(주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5길 58 석탄회관빌딩 2층 소년한국일보 편집국 퀴즈 담당자 앞, 우편번호 03151)으로 13일까지 보내 주세요. 이때 집 주소와 학교, 학년, 전화번호를 꼭 적어야 합니다. 정답자 가운데 추첨을 통해 3명에게 벅스리움 가족 초대권(2명)과 치유 곤충 사육세트(1명)를 선물합니다. 많은 응모 바랍니다. ▶힌트① 수컷의 큰
파타고니아이빨고기파타고니아이빨고기는 남반구의 차가운 물을 좋아해요. 새끼들은 얕은 물을 좋아하는데, 그곳에서 크릴새우 같은 작은 갑각류를 잡아먹어요. 클수록 물고기를 찾아 더 깊은 물(수심 3850m)로 들어가지요. 어른 파타고니아이빨고기는 기회 섭식자예요. 마주치는 먹잇감을 가리지 않고 먹는다는 뜻이에요!몸길이가 2m 넘게 자라고 물고기치고는 오래 살아서 50살을 넘기기도 해요!나를 너무 많이 잡지 마세요!여러 나라에서 고급 해산물로 여겨서 파타고니아이빨고기(일명 ‘메로’)를 많이 잡아요. 안타깝게도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는 바람에
새 학기를 맞아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곤충전시체험관 ‘벅스리움’과 함께 곤충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코너를 매월 2회 마련합니다. 정답은 e-메일([email protected]) 또는 우편(주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5길 58 석탄회관빌딩 2층 소년한국일보 편집국 퀴즈 담당자 앞, 우편번호 03151)으로 3월 30일까지 보내 주세요. 이때 집 주소와 학교, 학년, 전화번호를 꼭 적어야 합니다. 정답자 가운데 추첨을 통해 3명에게 벅스리움 가족 초대권(2명)과 치유 곤충 사육세트(1명)를 선물합니다. 많은 응모 바랍니다. 네모에 들어
희망찬 갑진년 새 학기가 시작됐습니다. 새 학기를 맞아 시흥에 위치한 곤충전시체험관 ‘벅스리움’과 함께 곤충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코너를 매월 2회 마련합니다. 가족과 함께 주어진 문제를 풀며 집중력ㆍ주의력ㆍ관찰력을 키워보세요. ▶ 힌트① 해발 1000m 이상 기온이 낮은 고산지대에 주로 서식해.② 초록색과 붉은색의 아름다운 금속광택을 지녔어.③ 속 날개가 퇴화되어 날지 못하고 달팽이나 지렁이 등을 잡아먹어.④ 지구 온난화로 인한 서식지 파괴로 2023년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됐어./벅스리움(시흥시곤충전시체험관) 제공
나는 한번 마음먹으면 반드시 해낸단다. 대학교에서 곤충을 연구할 때, 곤충 채집을 나가면 비가 와도 반드시 곤충을 찾아냈지. 그래서 교수님이 나한테 나비를 연구하라고 하셨나 봐. 나는 우리 농업을 발전시켜 일본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을 생각이었는데 나비라니, 처음엔 좀 우스웠어. 하지만 우리 땅의 나비를 내 손으로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 뒤로 나는 11년 동안 75만 마리의 나비를 채집해 연구했어. 그러면서 일본 학자들이 우리나라 나비를 잘못 분류했다는 걸 알아냈지. 나는 제대로 된 나비 분류 방법을 새로 만들고
상상력으로 꿈을 펼친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영화관에 처음 갔을 때 어떤 기분이었니? 나는 영화관에서 처음 영화를 봤을 때, 너무 신기해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였어. 기차가 부서지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 준 그 영화는 내 머릿속에 콕 박히고 말았지.나는 혼자 상상하던 세상을 직접 영화로 만들고 싶었어. 그래서 곧장 행동으로 옮겼지. 아빠 카메라를 빌려 가족들을 찍기 시작한 거야. 동네 아이들을 모아 제2차 세계 대전을 다룬 영화도 만들었어. 그리고 그때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어. 바로 영화감독이 되는 거야. 나는 짧은 영
정직하게 번 돈을 사회로! 기업가- 유일한나는 열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어. 아버지가 집안 형편이 어려워 아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할까 봐 미국으로 보내신 거야. 아버지는 내가 공부를 잘하고 돌아와 큰 인물이 되길 바라셨어. 하지만 그 무렵 일본에 우리나라를 빼앗기고 말았지. 나는 나라를 도우려고 미국에서 회사를 차렸어. 회사는 잘되었고 돈도 꽤 벌었지. 나는 그 돈을 밑천 삼아 한국에 돌아와 제약 회사를 차렸고, 내 이름을 따서 유한양행이라고 했단다. 유한양행은 외국에서 좋은 약을 들여와 팔았어. 그때까지 우리나라는 변변한 약 하
달에 첫발을 내디딘 우주 비행사 - 닐 암스트롱나는 어려서부터 비행기를 무척 좋아했어. 당연히 내 꿈은 비행기 조종사였지. 결국 열여섯 살 생일 때,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땄단다. 그 뒤로 대학교에서는 항공 공학을 공부하고, 한국전쟁에 비행사로 참전하기도 했어.나는 하늘에서 마음껏 내 꿈을 펼쳤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어. 더 먼 곳, 수많은 별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신비로운 세상! 바로 우주에 가고 싶었어. 그래서 미국항공우주국의 우주 비행사가 되었지. 우주 비행사 훈련은 무척 고되고 힘들었지만, 나는 당당하게 모든 훈련을 마
불가능이 없는 프랑스 황제 - 나폴레옹나는 열다섯 살에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열 달 만에 장교 시험에 붙었단다. 그러던 중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어. 먹고살기 어려운 시민들이 힘을 모아, 못된 왕과 귀족들을 몰아낸 혁명이지. 나는 시민들을 도와 싸웠어. 다행히 시민들이 이겼고, 나는 군대에서 더 높은 자리에 올랐단다. 그 뒤, 나는 프랑스를 넘보는 유럽의 여러 나라와 싸워 크게 이겼어. “우리는 프랑스의 자유 정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마지막까지 힘을 다해 싸웁시다!”병사들은 내 말에 자신감을 얻어 오스트리아를
진화론을 정립한 생물학자 - 다윈내가 갈라파고스의 여러 섬에서 동식물을 관찰하고 있을 때였어. 특히 갈라파고스 핀치 새를 집중적으로 관찰하다가 한 가지 신기한 사실을 알아냈지. 어떤 새는 부리가 살짝 구부러져 있고, 어떤 새는 곧지만 짧고, 또 어떤 새는 다른 새에 비해 단단하고……. 같은 핀치 새인데도 사는 곳이나 먹이에 따라 생김새가 조금씩 다르다는 걸 알게 된 거야!나는 탐험에서 돌아와 더 깊이 연구했어. 그리고 모든 생물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변한다는 진화론을 내놓았지. 처음에는 동식물의 가짓수가 적었지만, 진화하면서 점점
인종 차별법을 없앤 흑인 대통령 - 만델라내가 태어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백인과 흑인이 함께 사는 나라야. 그렇지만 백인들은 흑인을 차별하는 법을 만들고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정책으로 흑인을 못살게 굴었어.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서 흑인의 권리를 찾는 운동에 뛰어들었어. 사람들을 모아 거리에서 “인종 차별법을 없애라!” 하고 목이 터져라고 외쳤지. 백인 정부는 시위를 이끈 사람들을 붙잡으려고 눈이 벌겠지. 나는 경찰에게 붙잡혀 27년이나 감옥에 갇혀 있었단다. 그래도 인종 차별법을 반대하는 운동은 계속되었고, 나를 석방하려는 운동도 활
일생을 청렴하게 산 정승 - 황희나는 스물여섯에 벼슬길에 올라 60여 년 동안 벼슬을 하며 나랏일을 했단다. 조선을 세운 태종을 도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백성에게 이로운 여러 정책을 만들었지. 태종은 나를 신뢰했지만, 태종의 뜻에 거스르는 말을 해서 귀양을 가게 되었단다. 그런데 세종이 왕에 오르자 다시 나를 불렀어. 내가 나라를 위해 쓸모 있다고 생각한 거야. 나는 세종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일했지. 우리가 넓힌 북쪽 땅을 잘 정비해서 오랑캐들이 넘보지 못하도록 하고, 농사법을 더 좋게 고치기도 했단다. 내가 오랫동안
를 그린 조선의 풍속화가 - 신윤복나는 그림 그리는 일이 아주 익숙했어. 우리 집안에 화가가 많았거든. 우리 아버지는 도화서에서 일하는 뛰어난 화가였어. 도화서는 나라에서 필요한 그림을 맡아 그리던 곳으로 그림 솜씨가 아주 빼어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었지.나도 도화서에서 나라 행사 때 쓰이는 그림들을 그렸어. 그렇지만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은 따로 있었어. 바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그리는 거야.나는 틈만 나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고 생생하게 그림으로 옮겼어. 또 사람들이 잘 드러내지 않
인과 예를 가르친 유교 창시자 ‘공자’나는 유교를 창시한 사람으로 4대 성인 중 한 사람이야. 유교는 내가 오랫동안 공부해서 깨우친 사상이야. 비록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공부는 게을리하지 않았단다. 나는 무엇이든 열심히 했어. 창고를 관리하는 나랏일을 맡았을 때는 물건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록했지. 일을 하면서도 꾸준히 공부해서 서른이 넘어서는 먼 나라까지 이름을 떨쳤어. 내게 학문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수없이 몰려와 평생 가르친 제자가 3천 명이 넘는단다. 나는 지혜, 용기, 덕을 갖춘 군자를
안녕? 나는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야. 나는 처음에 화랑*에서 일했어. 화랑에서는 아름다운 그림을 종일 볼 수 있어서 참 행복했지. 하지만 언젠가부터 다른 사람들을 위해 더욱 뜻깊은 일을 하고 싶었어. 그래서 화랑을 그만두고 탄광에 들어가 가난한 광부들을 도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 이때부터 혼자 그림을 그렸어. 서툰 솜씨였지만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행복했지.동생 테오는 책과 물감을 보내 주며 늘 힘을 북돋워 주었어.“형, 그림 공부를 해 보세요. 난 형이 훌륭한 화가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테오를 생각해서라도
오랜 옛날, 낙동강 동쪽에 있는 나라 진한의 여섯 마을 사람들은 내가 열세 살이 되자 나를 왕으로 떠받들었어. 사람들은 내가 알에서 태어났다며, 하늘이 보낸 특별한 사람으로 여겼거든. 나는 왕에 오르면서 나라 이름을 ‘서라벌’이라고 했어. 그리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백성들에게 직접 농사를 가르쳤단다.“우리 땅은 기름져서 농사를 짓는다면 겨울에도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나는 백성들이 헐벗고 굶주리지 않도록 잘 보살폈단다. 나라 형편이 좋아지자 나는 금성을 서울로 정하고 궁궐을 지었어. 이제 제법 나라 꼴을 갖추게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