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님, 제가 며칠 전에 『빨간 머리 앤』이라는 소설을 읽었는데요. 길버트가 앤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홍당무’라고 놀렸거든요. 원숭이도 엉덩이가 빨갛다고 놀림을 많이 받던데, 빨간 머리를 가진 사람도 앤처럼 놀림을 많이 받겠죠?”
동배가 질문하자 김초록 박사가 반색하며 말했습니다.
“빨간 머리는 옛날부터 서양에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머리색 가운데 하나였어. 빨간 머리를 가진 사람은 교활하고 화를 잘 낸다며 상대하기를 꺼렸지. 심지어 빨간 머리를 가진 사람을 악마로 몰아 화형에 처하기도 했단다. 마녀 사냥이 성행했던 중세 유럽에서는 빨간 머리 때문에 마녀로 몰려 목숨을 잃은 여인들이 수없이 많았어.”

창희가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습니다.
“빨간 머리를 왜들 그렇게 미워했나요?”
“그 이유는 유럽을 침략했던 바이킹 가운데 빨간 머리나 붉은 수염을 가진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야. 800~1100년 사이에 영국과 프랑스 해안가 주민들은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노르만족 바이킹의 침공으로 공포에 떨었단다.”
“사람들이 빨간 머리를 싫어했다면 빨강도 싫어했나요?”
세라가 갑자기 생각난 듯 그렇게 물었습니다. 김초록 박사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그렇지 않아. 빨강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 가운데 하나이거든. 지금부터 빨강에 대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게.”
빨강을 영어로 ‘레드’, 프랑스어로 ‘루주’, 독일어로 ‘로트’, 이탈리아어로 ‘로소’라고 하지. 또 그 빛깔 때문에 피를 상징하지. 우리나라 말인 빨강은 ‘붉다’에서 나왔어. 
그리고 빨강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색이란다. 석기 시대에 이미 동굴 벽화에 빨간색이 사용되었거든. 얼마나 널리 쓰였는지 ‘색이 있다’라는 말은 빨강과 같은 의미였어.
옛날에 빨강은 전쟁의 색이었어.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나 에트루리아 사람들은 온몸에 빨간색을 칠하고 전쟁터에 나갔지. 로마 병사들은 ‘피의 깃발’인 빨간색 깃발을 신호로 하여 일제히 공격했단다. 로마군의 지휘관은 빨간 망토를 둘렀어.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처음 이를 사용했는데, 망토의 빨강은 전쟁의 신 마르스를 상징하지.
10세기경 바이킹은 전투를 시작할 때 돛대 위에 빨간 방패를 매달았어. 이것은 전쟁 선포를 뜻했지. 
현대에 와서 빨강은 공산주의를 나타내는 색이 되었어. 그전에 빨간색 깃발은 혁명의 상징이 되었는데, 1791년 프랑스 대혁명 때 빨간색 깃발 아래 모인 군중들이 경찰의 발포로 50여 명이나 희생되었기 때문이야.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여러 공산 국가들이 빨강을 국기의 색으로 사용함으로써 빨강은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색이 되었지.
세월이 흘러 부유한 시민 계층이 생기면서 빨강은 부자의 색이 되었어. 부자들은 혼인할 때도 빨간색 혼례복을 입었지. 빨강을 신분과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은 1870년대에 들어와서야. 인공 합성 염료인 아닐린 염료가 나왔거든. 
중국 사람들은 빨강을 좋아한다고 해. 특히 춘절에 빨강을 많이 사용하는데, 선물이나 축의금도 빨간색 봉투에 담아서 준단다. 이처럼 빨강을 좋아하는 것은 빨강이 악귀를 물리치고 복을 불러온다고 믿어서야. 크리스마스 하면 산타클로스가 떠오르고, 산타클로스 하면 빨간색 옷이 생각나지? 산타클로스가 빨간색 옷을 입는 것은 코카콜라 회사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어. 1920년대에 코카콜라 회사는 겨울철에 콜라가 팔리지 않자 광고 전략을 세웠어. 코카콜라 광고에 빨간색 옷을 입고 코카콜라를 마시는 산타클로스를 등장시킨 거야.

“김초록 박사님, 이야기 잘 들었어요. 옛날에는 빨강이 왕이나 귀족 등 권력자의 색이었군요.”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하자 김초록 박사가 말했습니다.
“참! 너희들, 스페인에서 투우 경기를 할 때 투우사가 빨간색 천을 흔들어 소를 흥분시킨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니? 사람들 대부분은 소가 빨간색을 보고 흥분하는 줄 아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단다. 소는 빨간색을 구별할 줄 모르는 색맹이거든. 소가 흥분하는 이유는 투우장에 나오기 전에 만 하루 동안 어두컴컴한 방에 갇혀 있다가 갑자기 밝은 햇살 속으로 걸어 나와서야. 그때 투우사가 칼을 쥔 채 천을 마구 휘두르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겠지?”
“아, 그렇군요. 새로운 사실을 알았어요.”

/자료 제공=‘인류 문명을 바꾼 아름다운 색깔 이야기’(신현배 글ㆍ이소영 그림ㆍ가문비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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