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님, 오늘은 빨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거죠? 약속하신 대로 옛이야기 한 토막을 먼저 들려주시면 안 될까요?”
“너희들, 어제 수업이 좀 지루했나 보다. 소원이라고 하니 옛이야기를 들려주지. ‘원숭이 엉덩이는 왜 빨간지 알려 주는 이야기야.”

옛날 베트남 어느 마을에 구두쇠 영감 부부가 살았어. 구두쇠 영감은 평생 노랑이짓을 하여 많은 재산을 모았지. 
구두쇠 영감 집에는 부엌일을 하는 젊은 하녀가 있었어. 이 하녀는 얼굴이 못생겼지만, 마음씨는 착했어.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못 지나치고,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애썼지.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 해가 기울 무렵, 거지 노파 한 사람이 구두쇠 영감 집으로 구걸을 왔어.
“게을러빠진 할망구 같으니.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공짜 밥을 먹겠단 말이냐.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구두쇠 영감은 집이 떠나가라 고함을 질렀어. 부엌에서 하녀가 뛰어나왔어. 하녀는 서슬이 시퍼런 구두쇠 영감의 눈길을 피해, 거지 노파를 문밖으로 데리고 갔어. 그러고는 공손히 말했지.
“할머니, 주인님을 대신하여 사죄 말씀드립니다. 제가 드실 것을 가져올 테니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녀는 거지 노파의 그릇을 가지고 부엌으로 들어갔어. 그러고는 자기 몫의 저녁밥을 그릇에 담아서 거지 노파에게 돌아왔어.
하녀가 밥그릇을 건네자, 거지 노파는 가슴이 찡 울려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지.
“아가씨는 반드시 큰 복을 받을 거요. 며칠 뒤 아가씨한테 산속으로 들어갈 기회가 생길 거예요. 그때 동북쪽으로 십 리쯤 걷다가 냇가가 나타나면 그 물에 꼭 목욕하세요. 그러면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 거지 노파는 밥그릇을 들고 총총히 떠났단다. 그로부터 며칠 뒤, 구두쇠 영감 부인이 하녀를 불렀어.
“오늘은 산에 가서 나물을 캐 오너라. 주인 영감님이 나물을 잡숫고 싶으시다는구나.”
하녀는 바구니를 옆에 끼고 산속으로 들어갔어. 거지 노파가 일러 준 대로 동북쪽으로 십 리쯤 걸어갔어. 그러자 정말 냇가가 나타났어. 하녀는 옷을 훌훌 벗고 물속에 뛰어들어 목욕했어. 이후 하녀는 나물을 뜯어서 구두쇠 영감 집으로 돌아왔어.
그런데 다음 날부터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어. 못생긴 하녀가 나날이 아름다워지는 거야. 

 

하녀에게 매혹되어 부잣집 아들이나 귀족 청년이 몰려들었어. 자기 집에 높은 신분의 젊은이들이 들끓자, 구두쇠 영감은 생각했어.
‘나한테 자식이 없는데 하녀 아이를 양딸로 삼아 버려? 그러면 나는 부자나 높은 벼슬아치와 사돈을 맺게 될 것 아냐. 거참, 괜찮네.’
구두쇠 영감은 망설이지 않고 하녀를 양딸로 삼았어. 그러던 어느 날, 구두쇠 영감 부부는 하녀를 안방으로 불러 이뻐진 비결을 물었어. 이를 들은 구두쇠 영감 부인은 귀가 번쩍 뜨였어. 구두쇠 영감 부부는 하녀를 집에 남겨 두고 산속으로 들어갔어. 두 사람은 서둘러 옷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갔어. 물속은 얼음장같이 차가웠지. 그래도 꾹 참고 목욕을 했어. 그런데 목욕을 마치고 물에서 나왔을 때였어. 구두쇠 영감 부부는 몸이 간지러워 견딜 수가 없었어. 그래서 온몸을 박박 긁었지. 그러자 몸이 금세 부어오르더니, 난데없이 털로 뒤덮이는 거야. 구두쇠 영감 부부는 서로의 변한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어. 구두쇠 영감 부부는 분통이 터졌어. 그들은 주먹을 불끈 쥐고 집을 향해 달려 내려갔어.
한편, 하녀는 구두쇠 영감 부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때 거지 노파가 불쑥 나타났어.
“아가씨, 시간이 없어요. 이 집 주인 영감 부부가 지금 원숭이로 변해 해치려고 달려오고 있어요. 이들은 아가씨가 자기들을 속여 원숭이로 변하게 한 줄로 알고 있거든요. 자기들의 죗값 때문에 그렇게 된 줄 모르고……. ”
“예.”
“대문 앞에 숯불을 피워 놓아요. 어서요!”
하녀는 거지 노파가 시키는 대로 대문 앞에 숯불을 피웠어.
잠시 뒤, 원숭이로 변한 구두쇠 영감 부부가 씩씩거리며 나타났어. 대문을 박차고 집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몸이 기우뚱했어. 원숭이 두 마리는 나란히 숯불에 엉덩방아를 찧었어.
“앗, 뜨거워!”
이들은 엉덩이가 빨갛게 되었어. 숯불에 덴 거야. 원숭이들은 겁이 더럭 나서 산속으로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어. 원숭이 엉덩이가 빨간 까닭을 알았지?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어요. 그런데 박사님, 원숭이는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는데, 왜 엉덩이가 빨간 거죠?”
“원숭이는 엉덩이에만 털이 없고 빨갛지. 그 이유는 원숭이 피부가 하얗고 얇아 핏줄이 투명하게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야. 엉덩이 피부 아래 많은 모세혈관이 있어 그 안에 흐르는 피가 그대로 보이는 거지.”

/자료 제공=‘인류 문명을 바꾼 아름다운 색깔 이야기’(신현배 글ㆍ이소영 그림ㆍ가문비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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