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가 이창건, 6년만에 동시집 펴내

‘오늘이 말한다’
(이창건 씀ㆍ숨 펴냄)

단언컨대 이창건 시인은 대한민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가장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순수한 시를 쓰는 아동문학가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과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장을 지낸 시인이 2017년‘사과나무의 우화’이후 6년 만에 동시집 ‘오늘이 말한다’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일흔 살이자 등단 42년째를 맞은 시인의 말에 따르면 “부끄럽고 부족하지만 용기를 내어 82편을 그림없는 동시집으로 엮었다.”고 한다. 그의 겸손과 달리 동시집 속 동시들은 좁은 의미의 동심을 넘어 어린이들의 성장을 위한 지혜와 성찰, 상처 입은 영혼들을 위한 위로와 사랑, 그리고 어른들의 잃어버린 동심 회복을 위한 서정성 짙은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주머니에 잊어버리고 있던 사탕을 우연히 발견해서 꺼내먹는 맛. 차분히 마음속에서 달콤해지는 이 책이 좋다.”
표지에 실린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의 표현처럼 동시집‘오늘이 말한다’는 좁은 의미의 동심을 넘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어린이’와 ‘다시 어린이가 되고 싶은 어른’, 그리고 모든 세대가 읽을 수 있는 시들을 4부에 걸쳐 짜임새있게 엮어 놓았다. 그의 동시를 차분히 읽다 보면 먼저 세상 깊은 속과 낮은 곳으로 지향하는 시 의식과 마주하게 된다. 

“빈손인 줄 알았는데 돌을 들고 있었다// 언제부터 들고 있었을까?//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누구를 향해 던지려 했을까// 내려놓아라, 내려놓아라// 새에게도 던지지 마라// 하늘에게도 던지지 마라// 내 손에 들려 있는 돌// 내 마음이 들고 있는 돌”
-‘돌’전문

“겨울 내내/ 병원에만 오고 가던 엄마가/새 봄, 봄 길을 나왔다// -그 꽃 그 자리/다시 피어도/ 그 꽃 아니다// -그 나무 그 자리/다시 살아도/ 그 나무 아니다”
-‘봄 길’전문

그의 동시들은 이렇듯 아름답고, 마음과 일상을 따뜻하게 만들며, 하루를 감사할 줄 알게 만드는 것들로 가득하다. 또 작고 약하고 안쓰러운 것, 그늘지거나 상처받은 영혼들을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지는 꽃’과 ‘그늘’에서는 실존에 대한 깊은 성찰이 느껴지고 커다란 철학적 울림을 준다. 
이번 시집에서 특별한 작품은 4부에 주로 실린 엄마에 관한 단상이다. 기존 시집들이 자녀들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사랑을 주는 관계에 머물렀다면 ‘엄마, 미안해요’,‘술래잡기’, ‘어떤 꽃은 눈을 맞고’에서와 같이 아픈 엄마, 이미 세상을 떠난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이 주된 정서로 그려진다.
“저의 시는 곧 저의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이번 동시집에서 애착이 가는 작품은 ‘못’과 ‘돌’이에요. 특히 ‘못’은 시인으로 살아가는 저 자신을 고백하는 작품입니다. ‘돌’을 통해서는 저 자신을 성찰하며 나는 정직한가, 나는 진실한가에 대해 스스에게 묻고자 했어요.” 
노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하는’절망 속에서도 곁에 있는 한 사람 덜 외롭게 하려고 덜 쓸쓸하게 하려고 애타는 시간이 참 많이도 지나간다.”그의 곁에 있는 한 사람은 시인의 아내로, 오랫동안 병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따라서 이번 시집 속 동시들은 세상의 아픔을 보듬어 안고 함께 울어주는 사랑의 인식이자 스스로 위선의 가면을 벗는 진정성의 고백이며, 참고 참았다가 가슴 속 깊이에서 솟구쳐 오르는 눈물로 빚은 자화상이다. 아내의 병 간호로 힘든 시인에게 이 글이 작은 위로가 되기를 빌어본다.


나는 못이다
태어날 때부터 뾰족해 늘 머리를 맞으면서도
나는 세상 속으로 깊이깊이 들어갔다

어떤 세상은 너무나 단단해
첫걸음도 떼지 못한 채
세상 밖으로 튕겨 나가기도 하고
때때로 허리가 구부러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알고 있었으므로

굽은 허리를 펴고 꼿꼿하게 세상을 걸었다

서로 다른 세상이 어긋나지 않게 맞춰지도록
맞춰진 세상이 다시 어긋나지 않도록

나는 보이지 않게 
세상 속으로 깊이깊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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