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는 닥나무를 주원료로 만드는 우리나라 고유의 종이야. 닥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서나 자라는데, 늦가을에 닥나무 밑동을 잘라 솥에 넣고 쪄서 껍질을 벗겨 말리면 흑피(黑皮)가 되지. 흑피를 흐르는 물이나 통 속의 물에 담가 불려 연하게 만든 뒤, 검은 외피를 긁어 벗기고 석회와 재를 넣어 만든 물에 넣어 서너 시간 끓여. 그리고 이것을 꺼내 맑은 물에 씻어 말리면 백피(白皮)가 되지. 그다음엔 백피를 넓고 편편한 바위 위에 올려놓고 빻거나 두들겨서 연하게 만들어. 그러고는 곱게 부서진 백피(닥펄프)에 물을 붓고 풀어, 닥풀 뿌리에서 얻은 끈끈한 즙을 섞은 후 잘 휘저어 주지. 그러고 나서 닥펄프를 뜸틀발에 붓고 종이를 떠내어 말리면 한지가 태어난단다. 
한지를 만드는 데는 아흔아홉 번 손질이 간다고 해. 그만큼 정성을 쏟지 않으면 좋은 종이를 생산할 수 없지. 105년경 중국 후한의 채륜이 발명한 종이는 3~4세기경 우리나라에 전해져 삼국 시대부터 한지가 만들어졌어. 『삼국사기』 월명사 도솔가 이야기에는 종이돈이 나오는데, 이때 이미 신라에서 종이돈이 쓰일 정도로 종이가 널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지. 신라의 종이 백추지는 중국에서도 명품으로 소문났어. 『일본서기』에는 610년 고구려 담징이 일본으로 건너가 종이 만드는 기술을 전했다는 기록이 있어. 
1966년 불국사 석가탑에서 「무구정광 대다라니경」이라는 목판 인쇄물이 발견되었어. 그런데 여기에 사용된 종이가 1천 3백여 년 전인 통일 신라 시대의 것이어서 한지의 뛰어난 점과 인쇄술을 세계에 보여 주었지. 이 전통은 고려·조선에까지 이어져 우수한 한지를 생산했어. 고려 시대에는 한지를 중국에 수출했는데, 품질이 뛰어나 중국인들을 놀라게 했어. 송나라 사람들은 고려 종이를, 중국에 없는 진기한 최고 명품으로 꼽았어. 『고반여사』에는 고려 종이를 이렇게 소개했지.

고려 종이는 질기고 두터울 뿐 아니라 뒷면의 광택까지도 앞면과 같아 양쪽 면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누에고치 솜으로 만들어져 종이 색깔은 비단같이 희고 질기기는 비단과 같은데, 글자를 쓰면 먹물을 잘 빨아들여 종이에 대한 애착심이 솟구친다. 이런 종이는 중국에는 없는 우수한 것이다.

중국인들은 닥나무로 만들어진 고려 종이(한지)를 누에고치 솜으로 만들어졌다고 착각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했단다. 한지의 명성은 조선으로 이어져 중국에서는 조공 진상품으로 한지를 최상품으로 여겼어. 황제나 높은 벼슬아치만 한지를 사용했다고 해.
조선 시대에는 인쇄 문화의 발달과 서적 간행의 증가로 종이 수요가 크게 늘어났어. 그래서 태종 15년(1415년), 한양 세검정 근처에 한지 만드는 공장인 조지서를 세웠지.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조지서에서 일하는 사람이 1천 명에 이르렀다고 해. 한지의 대량 생산으로 원료인 닥나무가 많이 필요하여 지방 곳곳에 닥나무 밭을 만들어 닥나무를 재배했지.
한지는 책뿐 아니라 창호지ㆍ벽지ㆍ장판지ㆍ모자ㆍ병풍ㆍ우산ㆍ부채ㆍ갑옷을 만드는 데도 쓰였어. 옛날 여인들이 먼 길을 떠날 때 한지로 발싸개를 만들어 신었어. 그래서 무좀을 예방할 수 있었지. 한지는 근대에 펄프를 주원료로 하는 종이가 많이 들어오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어. 그러나 잘 상하지 않고 질기며 오래 보존하는 등 품질의 우수성은 인정을 받고 있단다.

고구려의 후예인 당나라 고선지 장군은 어떻게 서양에 종이를 전파했을까요?
고선지는 고구려가 멸망한 뒤 당나라로 끌려간 고구려 유민의 아들이야. 아버지 고사계가 당나라 군대에 들어가 장교로 근무했지. 고선지도 아버지를 따라 당나라 군대에 들어가 무술을 익혔어. 그는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아 스무 살에 장군이 되었단다. 그 뒤 당나라군을 이끌고 서역 원정에 나서 승승장구하며 중앙아시아에 당나라 세력을 넓혔으며, 동서의 교통로인 실크로드를 개척했어.
751년 고선지는 탈라스 평원에서 타슈켄트ㆍ사라센 연합군과 세계 전쟁사에 남을 전투를 벌였지. 이 전투가 ‘탈라스 전투’야. 고선지는 7만 대군을 거느리고 닷새 동안 싸웠지만, 동맹군인 카를루크족의 배반으로 크게 패하고 말았지. 당나라군은 고선지를 포함하여 살아 돌아간 사람은 수천 명밖에 되지 않았어.
당나라군은 2만 명이 타슈켄트ㆍ사라센 연합군의 포로가 되었단다. 그런데 이 전투는 뜻밖의 결과를 낳았어. 당나라군 포로 가운데 종이 만드는 기술자들이 있어 중국의 종이가 이슬람과 유럽에 전해진 거야. 종이 만드는 기술은 실크로드를 따라 사마르칸트ㆍ바그다드ㆍ카이로에 전해졌어. 이슬람 세계는 옛날에 이집트에서 만든 파피루스를 사용했지. 그러다가 양피지에 기록을 남겼단다. 그런데 중국의 제지술로 종이를 만들어 사용하니 너무도 간편하고 좋았어. 그래서 중국의 종이는 이슬람 세계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 그 뒤 종이 만드는 기술과 인쇄술의 결합으로 구텐베르크의 인쇄 혁명이 일어나고, 그 영향은 르네상스ㆍ종교 개혁 등으로 이어졌어. 장군의 서역 원정과 탈라스 전투 패배가 인류 문명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할 수 있겠지?

/자료 제공=‘식물로 보는 한국사 이야기 ① 고조선부터 고려까지’(신현배 글ㆍ김규준 그림ㆍ뭉치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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