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쥬리
여름방학이라서 워터 파크나 바다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친구들이 많을 텐데요. 저는 지금 계곡에 와 있답니다. 이 시원한 물소리가 들리나요? 계곡에서 먹는 라면과 수박도 꿀맛이지만 물소리를 들으며 먹는 닭백숙이 진짜인 거 알죠?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있듯이 무더운 여름날에도 저처럼 닭백숙과 삼계탕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아니나 다를까 뜨거운 여름철 보양식 1위가 삼계탕이라고 하네요. 8월의 폭염 속에서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좋은 음식을 잘 먹는 것이죠! 그럼 땀을 흘려 가며 삼계탕을 먹는 이유를 알아볼까요?


복날에 삼계탕을 먹는 이유
왜 복날에 삼계탕을 먹나요?
더위에 지친 몸을 회복하는 데 효과가 크기 때문이에요.
복날은 초복ㆍ중복ㆍ말복으로 7월 중순에서 8월 중순에 걸쳐 있고, 한 해 중 가장 더운 시기예요. ‘복(伏)’이라는 한자는 사람이 개처럼 납작 업드려 있는 형상을 따서 만들었는데요, 가을의 기운이 내려오다가, 가시지 않는 더위에 눌려 기세를 펴지 못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여름철에는 땀이 많이 나면서 체력 소모가 커요. 또 찬 음식이나 음료를 자주 먹다 보면 더운 바깥공기와 달리 신체 온도가 낮아지는데, 몸 밖이 덥고 안이 차가우면 위장 기능이 약해져 기력을 잃고 병을 얻기 쉬워져요. 이때 따뜻한 성질의 음식으로 기력을 회복해야 한답니다. 따라서 따뜻한 성질을 가진 닭에 피로 회복에 좋은 인삼과 대추, 마늘 등을 넣어 푹 끓인 삼계탕을 먹는 것이지요.


닭백숙과 삼계탕의 차이
닭백숙과 삼계탕은 같은 음식인가요?
인삼의 유무에 따라 다르답니다.
닭백숙과 삼계탕의 주재료는 닭인데요, 그 차이는 바로 ‘인삼’이에요. 백숙은 큰 닭을 그대로 삶지만 삼계탕은 어린 닭에 인삼을 넣어 만든 음식이지요. 삼계탕은 일제 강점기에 나온 『조선요리제법』이라는 요리책에 기록되어 있어요. 주로 부잣집에서 닭백숙과 닭국에 가루 형태의 인삼을 넣었던 것이 삼계탕의 시작이에요. 닭이 주재료이고 인삼이 부재료였기에 ‘계삼탕’이라 불렀어요. 닭을 가리키는 한자인 계(鷄)를 앞에 놓은 것이지요. 

▲삼계탕
▲삼계탕

 

계삼탕에서 삼계탕으로
왜 지금은 삼계탕이라고 부르나요?
6ㆍ25 전쟁 이후에 계삼탕에서 삼계탕으로 바뀌었어요.
6ㆍ25 전쟁이 끝난 뒤 피해 복구를 지원하고자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한국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우리나라는 이들의 방문을 고마워하면서도 대접할 음식 때문에 고민이 깊었지요. 
그 당시 외국인들은 우리가 즐겨 먹던 된장찌개와 청국장, 비지찌개는 구린내가 난다고 피했고, 특별식으로 만든 떡은 고무줄을 씹는 것 같다며 손도 대지 않았거든요. 다행인 것은 외국인들이 고기를 좋아하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불고기를 끼니때마다 준비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이때 대사관 근처의 한 식당에서 계삼탕을 팔았지요. 푹 삶은 닭의 부드러운 육질과 고소한 국물이 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어요. 발 빠른 상인들은 한국의 특산물인 인삼을 홍보하며, 계삼탕이 몸에 좋은 고급 요리라는 인식을 심었지요. 계삼탕을 먹은 외국인들은 힘이 솟는 느낌이라며 좋아했어요. 하지만 이들에겐 계삼탕이라는 발음이 쉽지 않았죠. 이로 인해 계삼탕을 삼계탕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해요. 또 다른 설은 인삼을 강조하
기 위해 ‘삼’을 ‘계’ 앞에 넣어 ‘삼계탕’이라 했다고도 합니다.

 


백숙으로 유명한 남한산성
남한산성이 백숙으로 유명한 이유가 뭔가요?
조선 시대의 인조와 관련이 있답니다.
인조반정(조선 광해군 15년에 서인 일파가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즉위시킨 정변)을 통해 왕위에 오른 인조는 자신을 도운 신하들에게 높은 관직을 내렸어요. 그런데 이괄은 공신이었음에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자 난을 일으켰지요. 이들 세력은 후금으로 도망쳐 조선의 상황을 알렸어요. 힘을 키운 후금은 나라의 이름을 ‘청’으로 바꾸고, 인조반정의 부당성을 핑계로 조선에 신하의 나라가 될 것을 강요했지요. 조선이 이를 거절하자 청나라 황제가 1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는 바람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해야 했답니다. 군사들은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 내며 공격을 막아 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어요. 이에 인조는 항복을 선택해야 했죠. 이때 인조의 음식을 담당했던 대령숙수가 마지막 남은 식량인 닭으로 백숙을 만들어 대접했어요. 인조는 굶주린 군사와 신하들 생각에 음식을 먹지 못하다가, 신하의 거듭된 권유에 마지못해 다리 하나만 먹었다고 해요. 그 이후로 백숙은 남한산성을 대표하는 요리로 자리 잡았답니다.

▲닭백숙
▲닭백숙

 

▷닭 요리 더 알아보기
치킨의 역사는 17세기 미국 남부에 살던 노예들의 삶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그 당시 흑인들은 미국으로 팔려 와 백인들의 노예가 되었는데, 이들은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지요. 흑인 노예들은 주인을 위한 음식으로 로스트 치킨을 준비했는데, 백인들은 포크와 나이프로 발라 먹기 힘든 날개와 발, 목은 먹지 않았어요. 노예들은 버려진 것들을 어떻게 먹어야할지 고민했지요. 남겨진 부위는 살이 거의 없어 구워 먹기도 어려웠기 때문이에요. 고민 끝에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기름에 튀기는 것이었어요. 밀가루를 살짝 묻혀 끓는 기름에 튀긴 닭은 맛도 좋고 냄새도 좋았거든요. 치킨 냄새에 이끌린 백인들은 노예가 먹는 음식에 군침을 흘리면서도 체면 때문에 먹겠다고 나설 수가 없었지요.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노예들에겐 이렇게 탄생한 치킨이 최고의 음식이었어요. 닭이 이들에게 제공된 유일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데다, 기름에 튀겨서 열량이 높은 음식이었기 때문이지요.

/자료 제공=‘초등 독서평설 8월호’(지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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