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형 발 찾아요
이수빈(아동문학가)
오늘도 여기엔 아주 많은 발이 있다. 고소한 냄새가 나는 갈색 구두, 매끈해서 핥아 보고 싶은 분홍색 구두, 무는 느낌이 좋을 것 같은 흰색 운동화…. 한참 돌아다녔지만 우리 형 냄새는 여전히 맡을 수 없었다.
“부산행 열차가 들어옵니다.”
이제 저 큰 기차가 들어오는 소리는 무섭지 않다. 나는 이제 아주 용감하다는 말이다. 먹먹해진 귀를 탈탈 털고, 문이 닫히기 전에 후다닥 올라탔다. 여기에 진짜로 탄 건 처음이었다. 기차 안에는 의자가 많았고, 새로운 냄새가 가득했다.
“어머, 웬 강아지람?”
콜록콜록, 엣취, 으악, 다양한 소리가 나를 따라왔다. 먼지 냄새가 나는 검은 구두가 나를 쫓아와서, 나는 의자 아래로 후다닥 숨었다.
“얘, 너도 멀리 산책하러 가고 싶으면 이 안에 들어와야 해.” 그 목소리는 바로 옆 바닥에 놓인 가방 안에서 들려 왔다. 네모난 가방은 처음 보는 게 아니었다.
“원래 나도 거기에 타고 왔었어. 우리 형이랑. 근데 형이 실수로 날 놓친 거야.” 입 밖으로 내뱉으니 갑자기 형이 더 보고 싶었다. 내가 물어뜯어서 잇자국이 난 검정색 운동화를 신는 우리 형 발이 그리웠다. 형 생각을 하니 갑자기 기분이 비를 맞은 것처럼 차갑고 무거워졌다.
“저기, 이걸 타면 우리 형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을까?”
“음, 모르겠어. 그렇지 않을까? 우린 부산에서 내려.”
부산이라는 게 뭔지는 모르지만, 왠지 형이 거기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이랑 헤어지고 내가 살던 곳은 서울역이라는 곳이었는데, 거기엔 형이 없다는 걸 이제 안다.
“너도 부산에서 내려 봐. 부산은 이 기차의 마지막 역이거든. 마지막인 곳에서 새로 시작하는 것도 있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음, 나는 보호소라는 곳에 있었어. 끝났다고 생각했지. 그러다 우리 언니를 만난 거야.” 상자 속의 목소리가 신난 듯 계속 말했다.
“언니랑 같이 살게 되고 나는 새로 태어난 것 같아. 이름도 생겼다고. 난 행복이야.”
그때 건너편에 있던 가방에서 다른 목소리가 혀를 차며 나에게 얘기했다. “쯧, 거기 아가야, 너는 그냥 버려진 게다. 내 옛 주인도 나를 버렸지. 내가 늙어서 귀엽지 않다고 말이야.”
“그럼 할머니 옆에 있는 건 누군데요?”
“이 인간은 추운 겨울에 거리를 떠돌던 나를 차 안에 들여줬어. 나를 그냥 할매라고 부르더구나. 나처럼 영리한 고양이도 버림받는데, 너희 강아지들은 오죽하겠니.”
“그래도 지금은 새 가족을 만난 거잖아요.” 행복이가 말했다.
“그건 그렇지. 인간은 그런 존재거든. 버리는 인간도 있고, 돌봐주는 인간도 있어. 그 둘을 구분하는 건 어렵단다.”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떻게 구분하면 좋을까요?”
할매가 대답했다. “사랑한다는 말, 그보다 확실한 건 널 보는 눈빛, 널 쓰다듬는 손길, 널 보며 웃는 입가, 널 부르는 목소리에 사랑이 가득한 것이지.”
“그렇다면 우리 형은 날 사랑해요. 전 버려진 게 아닌걸요.”
“얘야, 버리는 인간과 돌봐주는 인간은 하나일 수 있어. 날 버린 인간도 내가 어릴 땐 귀엽다며 돌봐주었단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눈물이 고였다. 꼬리가 힘없이 축 늘어졌다. 행복이가 말했다. “야, 걱정하지 마! 기차에서 내려 새로운 곳에 가면 새로운 일이 많이 생길 테니까!”
나는 꼬리를 말고 엎드렸다. 졸음이 쏟아졌다.
“얘, 얘! 일어나! 부산이야!” 나는 놀라서 일어났다. 행복이가 있는 가방이 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꼭 좋은 일이 생길 거야. 힘내!” 옆에 있던 할매도 말했다. “이 인간은 이렇게 나이 든 나도 귀엽다고 말하지. 너도 행복해질 게다.”
모두가 내린 열차에서 나도 내렸다. 역에는 새로운 발이 많았다. 꼬리가 마구 흔들렸다. 나는 당당하게 첫발을 내디뎠다. 어떤 일이 생기든 이겨낼 자신 있다. 나는 용감한 강아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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