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정의와 특징

‘재벌’이 영어 사전에? 
옥스퍼드 영어 사전을 알고 있나요? 영국의 명문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편찬한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영어 사전이랍니다. 이 사전은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를 하는데, 2021년에 무려 25개의 우리말 단어가 새로 올라갔어요. 오빠(oppa), 언니(unni), 먹방(mukbang), 대박(daebak) 등의 단어가 이때 새로 ‘영어의 자격’을 얻었답니다.
영어가 아닌 외국어가 옥스퍼드 사전에 오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해요. 우선 당연한 이야기지만 영어에는 없는 말이어야 해요. ‘책’이나 ‘식탁’ 같은 우리말이 옥스퍼드 사전에 올라갈 수 없는 이유는 book이나 table 같은 영어 낱말이 버젓이 있기 때문이지요. 반면에 오빠나 언니는 달라요. brother나 sister라는 영어 단어가 있긴 하지만, 오빠와 언니가 사실 이 단어와는 다르잖아요. 콘서트에서 아이돌 가수들을 보고 “오빠!” 하고 부른다 해서 그 아이돌이 내 친오빠가 아닌 것과 같은 이치죠.
또 다른 조건은 그 단어가 세계적으로 널리 쓰여야 해요.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은 왜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없나요?”라고 물으신다면, 그 말을 쓰는 외국인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어요. ‘오빠’나 ‘언니’는 알아들어도 ‘알잘딱깔센’은 못 알아듣는 외국인이 대부분이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려 드리죠. ‘재벌(chaebol)’이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올라 있다는 거예요. 이 말은 재벌이라는 단어가 영어에 없는, 즉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말인데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실제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올라 있는 재벌의 설명을 살펴볼까요? 

chaebol: In South Korea, a large business conglomerate, usually owned and controlled by one family.

어렵지 않으니 해석을 해 볼까요?
 
재벌: 한국에서 쓰는 말인데(In South Korea), 한 가문이 소유하고 지배하는(usually owned and controlled by one family) 매우 큰 복합 대기업(a large business conglomerate)이다.


재벌의 첫 번째 조건
우리가 보통 부잣집 친구를 보면 “쟤는 재벌집 자식이야.”라는 말을 쉽게 했단 말이죠. 그런데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따르면, 재벌은 단순히 ‘부자’를 뜻하는 단어가 아니에요. 그냥 부자라면 ‘the rich’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재벌이 정확히 뭐냐? 이걸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큰 기업을 소유한 사람인데, 이 큰 기업이 그냥 크기만 한 게 아니고 복합 대기업(conglomerate)이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복합 대기업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회사를 뜻해요. 대표적인 회사가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이랍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만든 회사가 바로 GE예요. 에너지와 금융, 미디어, 의료, 엔터테인먼트, 환경, 조명, 항공기 엔진, 디젤 기관차 등 주요 사업만 수십 가지에 이르지요. 
친구 중에 엄청나게 큰 식당을 하는 집의 자녀가 있다고 해 봐요. 그 친구 집이 부자라는 이유로 “쟤는 재벌집 자식이야.”라고 말해서는 안 되지요. 왜냐? 식당은 음식 만드는 일 하나만 하는 기업이어서 GE처럼 다양한 일을 하는 복합 대기업이 아니거든요. 

 

재벌의 두 번째 조건
제벌의 두 번째 조건은 ‘한 가문이 소유하고 지배한다(usually owned and controlled by one family)’는 것이에요. 즉 재벌이란 복합 대기업을 운영하는데, 그걸 대대로 한 가문에서 물려받은 사람들이란 뜻이죠. 아까 GE가 미국을 대표하는 복합 대기업이라고 했잖아요? 이 회사의 회장이 H. 로렌스 컬프 주니어라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컬프 회장을 보고 “저 사람이 미국 재벌이구나!”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 이 사람은 복합 대기업의 회장이긴 하지만, 그 회사를 물려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죠.

그러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 재벌이냐? 우리나라 삼성 그룹을 이끄는 이재용 회장이 대표적인 재벌이랍니다. 일단 삼성은 여러 가지 일을 해요. 스마트폰도 만들고, 텔레비전도 만들고(이상 삼성 전자), 보험도 하고(삼성 생명, 삼성 화재), 주식도 하고(삼성 증권), 배도 만들고(삼성 중공업), 아파트도 짓고, 놀이동산도 운영하고, 옷도 만들고(이상 삼성 물산), 약도 만들고(삼성 바이오로직스), 호텔도 경영하고(호텔 신라), 광고도 제작하고(제일 기획), 경호도 하고(에스원), 심지어 병원도 운영하죠(삼성 서울 병원). 이렇게 보면 뭐 하는 회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하잖아요. 재벌의 첫 번째 조건을 충족한 셈이죠. 그런데 이 회사는 3대째 이씨 가문이 물려받아서 경영을 해요. 삼성 그룹의 창업자는 이병철 회장, 2대 회장은 이병철 회장의 셋째 아들인 이건희 회장, 3대 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회장이죠. 이러면 비로소 재벌의 두 번째 조건을 충족하게 돼요.

우리나라에만 있는, 재벌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재벌이라는 우리말이 따로 오른 이유가 바로 이것이랍니다. 이런 기업 형태가 외국에는 없기 때문이죠. 형태 자체가 없으니 그걸 설명하는 영어 단어도 없고요. 다시 말해 재벌이란 우리나라에만 있는 아주 독특한 기업 형태라고 보면 되지요.
사실 재벌의 원조는 일본이에요. 한자로는 우리와 똑같이 ‘財閥’이라 쓰고, ‘자이바츠’라고 읽죠. 그런데 자이바츠의 역사는 우리와 좀 달라요. 삼성과 현대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 재벌들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 후반이나 6ㆍ25 전쟁 이후 만들어졌지만, 일본 자이바츠의 역사는 18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거든요. 일본을 대표했던 3대 자이바츠로는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가 꼽히지요. 이들은 제조업부터 금융업까지 안 하는 일이 없는 복합 대기업이었어요. 게다가 각각을 대표하는 가문이 대를 이어서 운영했죠. 전형적인 재벌이었던 셈이에요.
하지만 일본의 자이바츠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완전히 사라졌어요.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일본을 잠시 점령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미국이 자이바츠를 강제로 해산시켜 버렸거든요. 미국 입장에서는 그렇게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한 가문이 기업을 대대로 물려받는 것이 매우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이런 이유로 일본의 자이바츠가 사라지면서, 우리나라는 사실상 재벌이 존재하는 유일한 국가가 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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