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공항
유순덕(시인ㆍ동화작가ㆍ문학박사)
나는 강아지 똘이입니다. 요즘 훈이 형은 손가락을 세며 봄을 기다립니다. 엄마가 치료를 위해 잠시 베트남에 갔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형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똘아, 엄마는 왜 안 올까? 입학식 때 엄마랑 같이 갈 건데.”
“오실 거야 형, 봄에 온다고 했잖아."
내 말을 들은 형은 말이 없었습니다. 이슬 맺힌 눈빛으로 할머니께 물었습니다.
“할머니, 봄이 우리 집까지 오려면 얼마나 걸려요?”
“글쎄다. 누나 학교 운동장까지는 왔을는지 모르겠구나.”
형은 양철 대문을 박차고 달려 나갔습니다. 나도 형의 뒤를 따라 달렸습니다. 소나무가 있는 언덕을 지나, 까치 집이 많은 숲을 지나, 문방구를 지나 학교까지 달렸습니다. 그리곤 운동장 이곳저곳을 살폈습니다. 
빨간 그네에 앉은 형이 소리쳤습니다.
“봄아, 어디 있어? 숨어 있으면 얼른 나와서 나 좀 밀어줄래?”
봄은 대답이 없었습니다. 형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습니다. 그때 수업을 마치는 벨 소리가 들렸습니다. 
형과 나를 발견한 5학년 강이 누나가 달려왔습니다. 
“너희들 여기 왜 온 거야?”
“할머니가 운동장에 봄이 왔을 거라고 해서, 찾으려고.”
“봄? 찾았어?”
“못 찾겠어.”
형의 눈에는 금세 이슬이 맺혔습니다. 누나는 형을 꼬옥, 안아주었습니다. 소매 끝으로 눈물을 닦던 형이 말했습니다.
“누나, 봄이 우리 집까지 오려면 얼마나 걸릴지 한번 세볼까?"
“그럴까?”
형과 누나는 한 걸음, 또 한 걸음, 보폭을 넓게 해 걸었습니다. 
“하나, 둘, 셋, 넷…열하나…스물…쉰…백….”
“하나, 둘…일곱…열, 하나, 둘…열, 하나….”
달리던 형이 누나에게 말했습니다.
“누나, 엄마는 꼭 열 밤만 자면 올 거야.”
“그럼, 당연하지.”
“봄아, 봄아, 나는 네가 무척 보고 싶어. 우리 인사하지 않을래?”
“……”
형은 큰소리로 봄을 불렀습니다. 하지만 봄은 대답이 없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마른 잎만 바닥으로 떨어뜨렸습니다. 형은 달려가 나뭇잎을 주웠습니다. 나뭇잎이 봄인 양 가슴에 품었습니다.
“누나, 우리 봄이랑, 똘이랑 다 같이 손잡고 달릴까?”
“그러자.”
“봄아, 넌 왜 그렇게 걸음이 늦는 거야? 내가 빨리 달리는 법을 가르쳐 줄게. 자, 내 왼손과 오른손을 잡아. 그리고 양팔을 벌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비행기가 되는 거야.”
“슈웅, ㅤㅆㅠㅤ우웅….”
형과 누나, 나는 비행기처럼 달렸습니다. 형은 가족이 함께 탔던 비행기를 떠올리며 소리쳤습니다.

“봄아, 지금 이곳은 봄을 위한 공항이야. 비행기들이 잠시만 쉬다 가는 곳 말야. 그러니까 너도 이제 아주 조금만 있다 우리 집으로 오는 거야. 알겠지?”
“알았습니다. 친구.”
“지금 친구라고 했어? 약속은 꼭 지켜야 하는 거 알지?”
“당연하죠.”
달리던 형이 누나 곁으로 다가가 말했습니다.
“치이, 누나가 봄 대신 말한 거 다 알고 있다 뭐.”
“정말? 미안.”
“누나, 봄은 이제 막 달리는 걸 배웠잖아. 그러니까 달리는 걸 아주 조금만 더 연습하고 우리 집에 올 거야.”
“맞아. 그럴 거야.”
우리 셋은 환히 웃었습니다. 시멘트 틈에 핀 아기 제비꽃도 웃었습니다. 
“누나, 엄마가 다닌 베트남 학교 앞에는 자전거랑 오토바이가 엄청 많았지?”
“맞아.”
“나도 언젠가 두발자전거 타보고 싶다.”
“내가 가르쳐 줄게.”
“와! 신난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울 엄마가 나가신다 따르르르릉….”
“하하하. 멍멍멍.”
나와 형, 누나는 신나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기 제비꽃도 박수를 보냈습니다. 우리는 학교 정문을 돌아 집으로 향했습니다. 
입학식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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