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는 고려 말에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둔 명장이었어. 그런데 이성계가 꽃 가꾸기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아니?
위화도 회군 사건으로 권력을 잡았다가 왕위에 올랐을 때 이성계는 고려의 왕이었어. 이제는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이런저런 문제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할 때 환관 김사행이 말했어.
“전하, 온갖 걱정으로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궁궐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는 것이 좋습니다. 저와 함께 팔각정으로 행차하시겠습니까? 고려 왕실의 화원이었던 곳입니다.”
“지금은 폐허가 되었을 텐데 왜 그리로 가자는 거냐?”
“폐허가 아닙니다. 제가 꽃을 심고 가꾸었습니다. 꽃이 활짝 피어서 볼 만합니다.”
이성계는 김사행을 따라 팔각정으로 향했어. 팔각정 아래에는 크고 작은 꽃밭이 있었어. 금강초롱ㆍ꽃다지ㆍ미역취ㆍ원추리ㆍ갱갱이 등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었단다. 꽃을 구경하다가 이성계는 팔각정으로 눈길을 돌렸어. 팔각정 안에는 나무로 칸을 만든 묘판이 설치되어 있었지. 묘판에는 괭이밥ㆍ노루귀ㆍ앵초ㆍ바람꽃 등의 봄 화초, 채송화ㆍ쑥부쟁이ㆍ수선화ㆍ접시꽃 등의 여름ㆍ가을 화초들의 모종이 칸마다 자라고 있었단다. 이성계는 꽃들을 보니 온갖 걱정과 근심이 다 사라지는 듯했어. 궁궐로 돌아온 그는 그날 밤 평안히 잠들 수 있었지.
이성계는 김사행에게 명하여 낡은 팔각정을 수리했어. 팔각정 주위에 나무를 심고 돌을 설치해 화원으로 아름답게 꾸몄지. 그러자 사헌부ㆍ사간원ㆍ홍문관 등 삼사의 관원들이 이성계에게 상소했어.
“전하, 이제 곧 한양으로 도읍지를 옮길 텐데, 아무 쓸모없는 정자에 그렇게 많은 수리비를 들여서야 되겠습니까?”
이성계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을 지그시 감고 혼자 빙그레 웃기만 했지. 그런데 팔각정을 수리한 뒤부터 궁궐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임금이 사라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어. 임금을 모시는 내시부 내관들도, 승정원 관리들도 임금이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했지.
어느 날 사헌부 관리인 안경검이 이성계를 미행하여 임금이 팔각정 화원을 자주 간다는 사실을 알아냈어. 그다음 날 안경검은 임금이 다니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이성계가 김사행을 데리고 나타나자 그 앞을 가로막았어.
“전하, 군왕이라면 백성들을 돌보셔야지요. 어째서 꽃을 가꾸는 일로 시간을 낭비하시는 겁니까?”
“너는 어찌하여 나를 궁궐 안에 가둬 두려 하느냐? 꽃을 가꾸는 것은 결코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이 일로 얼마나 마음의 안정을 찾았는지 아느냐? 너는 촌각을 다투는 나랏일이 아니라면 내게 고하지 말아라!”
이성계는 안경검에게 엄하게 말하고 팔각정으로 향했어. 앞서 걷던 이성계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길바닥을 내려다보았어. 그의 눈길이 머문 곳은 노랗게 핀 씀바귀꽃이었어. 김사행이 조
심스럽게 물었지.
“전하, 씀바귀꽃을 캐어 화원에 심을까요?”
이성계는 고개를 가로저었어.
“아니다. 흔한 꽃이지만 아름답지 않느냐? 우리가 캐어 가면 백성들이 보지 못할 거야. 나중에 씨를 품으면 거두어 화원에다 뿌리도록 하지.”
이성계는 팔각정 화원으로 가서 손수 물을 주고 꽃을 가꾸었어.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지. 이성계는 도읍지를 한양으로 옮긴 뒤에도 경복궁에 화원을 꾸미고 꽃을 가꾸었어. 
‘궁궐뿐만 아니라 한양이 꽃으로 덮인다면 얼마나 좋을까?’이성계는 이런 생각을 하며 백성들을 꽃처럼 정성껏 돌보았단다.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이 꽃을 좋아하는 왕이었다고요?
조선 제10대 연산군은 조선 왕조의 대표적인 폭군으로 손꼽히는 인물이야. 무오ㆍ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문신을 처형했고 사치와 낭비를 일삼았어. 
그런데 이런 연산군이 꽃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니?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는 연산군에 대해 자질이 총명하지 못한 위인이어서 어릴 때 학문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기록했어. 하지만 연산군을 가르쳤던 송일의 증언에 따르면, 세자 시절 연산군은 총명했다고 해. 특히 시를 좋아하여 시문을 잘 지었대. 연산군은 자신이 쓴 시를 모아 시집까지 만들었는데 임금 자리에서 쫓아낸 반정군이 춘추관에 있는 시집을 불태웠다고 해. 이런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연산군이 꽃을 좋아했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여겨지지? 연산군은 경복궁 옆에 있는 장원서에 아름다운 꽃들을 모아 놓았어. 유독 좋아한 꽃은 왜철쭉이었지.

연산군은 왜철쭉이 있다고 하면 사람을 보내 뿌리에 흙을 매단 채 한양으로 가져왔단다. 이런 사실을 안 지방 관찰사들이 임금에게 잘 보이려고 아무 꽃이든 한양으로 급히 보냈대. 꽃이 말라 죽지 않게 뿌리에 흙을 매단 채로 말이야. 하지만 연산군이 임금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이런 소동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지.

/자료 제공=‘식물로 보는 한국사 이야기 ② 조선 전기부터 조선 중기까지’(신현배 글ㆍ김규준 그림ㆍ뭉치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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