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통교 근처 장통방에 장경의라는 역관(조선 시대의 중인 계층)이 살고 있었어요. 장경의는 장통교 주변에서도 소문난 부자였는데 그에게는 장옥정이라는 예쁜 딸이 있었어요. 
“임금님께서 오늘 영희전에 참배하러 수표교를 지나가신대.”
장옥정도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조선 시대 임금들은 설, 한식, 단오, 추석, 동지, 섣달 그믐날이면 임금의 영정(사람의 얼굴을 그린 그림)을 모신 영희전으로 참배(영정 앞에서 절하고 기도하는 일)를 떠났어요. 영희전은 남부 훈도방에 있었는데, 그곳에 가려면 수표교를 건너야 했어요. 장통방 앞 장통교는 광통교와 수표교 사이에 있었어요.
장옥정은 임금님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려고 내내 기다렸어요. 숙종은 수표교를 건너면서 장통교 주변을 바라보았어요. 그러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장옥정과 눈이 마주쳤어요. 장옥정을 처음 본 순간 숙종은 마음이 흔들렸어요. 그래서 신하에게 물었어요.
“저기 문밖에서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아가씨가 누구냐?”
“저곳은 역관 장경의의 집이옵니다. 아마도 그의 딸인듯 하옵니다.”
“그래? 저 처자를 궁궐로 부르도록 하라.”
22세의 장옥정은 이렇게 해서 1680년 궁녀로 궁궐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그 뒤 장옥정은 숙종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1686년 곧 숙원(조선 시대 임금의 후궁에게 내리던 품계)에 오르게 되었지요. 하지만 이후부터 장옥정으로 인해 궁궐에는 큰 혼란이 찾아왔어요. 숙종의 왕비 인현 왕후는 예의 바르고 덕이 높았지만 왕자를 낳지 못했어요. 이 일은 나라의 큰 걱정거리이기도 했지요. 그런데 1688년 장옥정이 왕자 균을 낳았어요. 숙종은 무척 기뻤어요. 그래서 어서 왕자 균을 왕세자로 삼고 싶어했어요. 그러나 송시열 등 여러 신하들이 이 일을 반대했어요.
하지만 숙종은 기어이 장옥정의 아들을 왕세자로 정했어요. 마음 착한 인현 왕후는 장옥정이 왕자를 낳은 것을 기뻐하며 이를 축하했어요. 그런데 장옥정은 왕후를 내쫓고 왕비에 오르고 싶은 욕심으로 가득했어요. 숙종이 장옥정을 희빈으로 올려 주자 이젠 인현 왕후를 모함하기 시작했어요.
“폐하, 왕자를 낳은 것을 질투하여 중전께서 저를 독살하려 했습니다.”
숙종은 장옥정의 말을 무조건 믿었어요. 이 일로 결국 인현 왕후는 궁궐에서 쫓겨나고 말았어요. 폐비(왕비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왕비)가 된 인현 왕후는 안국동 친정으로 가서 눈물로 세월을 보냈어요. 인현 왕후가 이렇게 4년이나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사이 장옥정은 마침내 중전의 자리에 올랐어요. 하지만 모든 백성들은 장옥정이 얼마나 악한 여자인지 알고 있었어요. 아이들이 이런 노래를 부르고 다닐 정도였지요.

장다리는 한철이나
미나리는 사철이라

장다리는 붉은 꽃을 피우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미나리는 약하지만 오래 간다는 뜻이에요. 장다리는 장옥정을 가리키는 것이고, 미나리는 인현 왕후 민씨를 가리키는 것이었어요. 장옥정이 인현 왕후를 내쫓고 왕비에 올랐지만 그다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하는 노래였지요. 이 노래는 숙종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왕후에게 했던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게 되었어요.
어느 날 숙종은 궁궐을 거닐다 무수리 최씨를 만났어요. 무수리는 세숫물을 떠다 바치는 여자 종을 말하지요. 최씨 역시 왕후가 궁궐에서 쫓겨난 것을 슬퍼하며 그리워하고 있었어요. 마침 숙종이 무수리 최씨를 본 것은 왕후의 생일날이었어요. 최씨는 자신의 방에 인현 왕후가 입었던 옷과 띠를 걸어 놓고 눈물짓고 있었어요. 
그러자 장옥정은 몹시 불안했어요. 그래서 무수리 최씨의 방으로 쳐들어갔어요. 뿐만 아니라 욕을 하며 최씨를 마구 때렸어요. 
그런데 숙종이 그 모든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제야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장옥정을 다시 빈으로 내리고 인현 왕후를 궁궐로 불러들여 왕비 자리에 앉혔어요. 
온 백성은 이 일을 기뻐했어요. 하지만 장옥정은 참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자신의 거처인 취선당으로 무당을 불러들였어요.
“어떻게 하면 인현 왕후를 죽일 수 있소?”
장옥정은 무당에게 인현 왕후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어요. 무당은 취선당 서쪽에 방을 마련하고 벽에 인현 왕후 그림을 걸었어요. 그리고는 화살로 그 그림을 쏘았어요. 무당은 장옥정에게도 활과 화살을 주었어요. 장옥정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무당으로부터 활과 화살을 받아 들었어요. 이번에는 장옥정이 활을 쏘았어요. 장옥정은 마치 정신이 나간 듯 쉴 새 없이 인현 왕후 그림에 화살을 쏘았어요. 화살을 모두 쏘면 몽땅 뽑아와 다시 쏘았지요.

비록 궁궐로 돌아왔지만 4년 동안이나 근심의 세월을 보낸 인현 왕후는 건강이 몹시 나빠져 있었어요. 이후 2년 8개월 동안 병을 앓다가 1701년 8월 35세 나이로 죽고 말았어요.

무수리 최씨는 억울한 인현 왕후의 죽음을 모른 체할 수 없었어요. 
“폐하, 중전마마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최씨는 숙종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어요. 숙종은 벌떡 일어섰어요. 취선당으로 달려가 문을 열어젖힌 숙종은 화살이 수없이 꽂힌 인현 왕후 그림을 보고 치를 떨었어요.
“당장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려라!”
사약을 받아 든 장옥정은 입을 꽉 다물고 사약을 마시려 하지 않았어요. 그러자 숙종이 또다시 명령했어요.
“장희빈의 입을 열어 사약을 부어라!”
신하들이 강제로 장옥정을 꼼짝 못하게 붙잡고 입을 열어 사약을 부어 넣었어요. 그러고는 뒤돌아 그곳을 떠났어요. 
“어마마마! 어마마마!”
오직 왕세자만이 장옥정을 부둥켜안고 울부짖고 있었어요.

/자료 제공: ‘청계천 다리에 숨어 있는 500년 조선 이야기’(김숙분 글ㆍ정림 그림ㆍ가문비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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