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날, 하늘에서 달빛이 환하게 쏟아지고 있었어요. 서울 사람들은 이날을 몹시 기다렸어요. 금빛 물이 흠뻑 들어 반짝거리는 청계천에 나가 다리밟기를 하려는 것이지요. 청계천에는 다리 12개가 놓여 있었어요. 다리밟기는 12개의 다리를 일일이 밟아 보는 놀이예요. 정월 대보름날 밤 서울 사람들은 광교와 수표교로 모두 나왔어요. 그리고 보신각 종소리를 기다렸지요. 종소리가 울리면 일제히 일어나 다리를 밟기 시작했어요. 어떤 사람은 태평소와 장구를 울렸어요. 그러면서 하늘에 걸린 달을 두 손 모아 바라보거나 때로는 청계천 물에 풍덩 빠진 달을 바라보며 기도했지요.
“제발 올 한 해 농사, 풍년 되게 해 주세요.”
“제발 올해엔 맏아들 장원 급제 시켜 주세요.”
해를 거듭할수록 사람들이 다리밟기에 더 많이 나왔어요. 정월 대보름만 되면 청계천은 너무 복잡해서 정신이 없었어요. 이렇게 되자 양반들은 정월 대보름 하루 전에 미리 나와 다리밟기를 했어요. 그래서 14일은 양반 다리밟기 날이 되었지요. 그러자 여인들은 ‘우리도 정월 대보름을 피해 우리끼리 하는 게 좋겠어.’하며 16일 밤에 모였어요. 여인들은 이날 밤 트레머리를 하고 예쁜 장식을 했지요. 이제 청계천은 3일간이나 북적거리게 되었어요.

 

조선 시대에는 한밤중에 사람이 함부로 다닐 수 없는 통행금지가 있었어요. 하지만 임금님은 사흘 밤 동안은 서울 사람들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허락했어요.
선조 때 ‘이안눌’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이안눌은 선비들이 모여 살던 남산골 청학동의 유명한 시인이던 이행의 손자였어요. 자연히 이안눌도 어릴 때부터 열심히 책을 읽었는데 책 한 권을 만 번이나 되풀이해 읽었다고 해요.
청년 이안눌도 친구들과 다리밟기를 하러 청계천에 나왔어요. 그 옆에선 소리패들이 장구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요. 이안눌과 친구들은 저절로 신이 났어요.
“자네, 예쁜 색시 얻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지 그래?”
한 친구가 이안눌에게 말했어요.
“자네도 그러길 바라네.”
이안눌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어요. 이안눌과 친구들은 광통교를 다 밟고 나서 다리 앞 술집에서 술 한 잔씩을 마셨어요. 그러다가 술이 취해 그만 뿔뿔이 헤어지고 말았어요. 이안눌도 연신 중얼거리며 걷고 있었지만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취해 있었어요. 이안눌이 가고 있는 곳은 신전골이라는 마을이었어요. 갑자기 이안눌 앞에 큰 대문이 보였어요. 
이안눌은 어머니를 부르며 대문 앞에 쓰러졌어요. 큰 대문의 집은 김지사라는 역관의 집이었어요. 김지사에게는 착하고 예쁜 외동딸이 있었어요. 김지사의 딸은 밖에서 다리밟기를 하느라 떠들썩한 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 누웠어요. 어서 16일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김지사의 딸은 무슨 소원을 빌지 곰곰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느라 잠이 잘 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살그머니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어요. 부모님도 하인들도 모두 깊이 잠이 든 듯 집 안이 조용했어요. 김지사의 딸은 대문 밖을 한번 내다보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다리밟기를 모두 끝냈나?’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대문으로 가 조용히 문을 열었어요. 삐걱 소리가 날까 봐 아주 조심조심 열었지요. 그런데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어요. 대문 앞에 이안눌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본 거예요.
“이대로 여기 누워 계시면 죽습니다.”
김지사의 딸은 안타깝게 이안눌을 흔들었어요. 하지만 꼼짝도 안 하는 것이었어요. 그대로 두면 얼어 죽을 게 뻔했어요. 하는 수 없이 김지사의 딸은 엄청난 결심을 했어요.
김지사의 딸은 있는 힘을 다해 이안눌을 부축했어요.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 간신히 데려갔지요. 그리고 방문을 얼른 닫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겁이 덜컥 났어요. 남녀가 마주 보지도 못하는 조선 시대에 모르는 청년을 자신의 방에 데려왔으니 정말 큰일이었지요. 새벽이 지나도록 김지사의 딸은 윗목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어요. 몇 시간이 흐른 뒤 이안눌은 정신이 드는지 간신히 일어났어요. 
“여기가 어디요? 처자는 누구시오?”
이안눌은 잔뜩 겁에 질려 물었어요.
“여기는 제 방이옵니다. 어젯밤 우연히 밖에 나갔다가 대문 앞에 쓰러져 계시길래 어쩔 수 없이 이렇게…….”
김지사의 딸은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그 말을 듣고 이안눌은 너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내가 큰 실수를 했구려.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에 어서 여기를 떠나야겠소.”
이안눌은 방문을 열려다 말고 김지사의 딸을 돌아보았어요. 자신이 가 버리면 김지사의 딸이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냥 두고 떠날 수가 없었어요.
“제가 해서는 안 될 짓을 했습니다. 저는 죽어 마땅합니다.”
김지사의 딸은 눈물을 멈추지 못했어요.
“당신이 나를 살려 냈으니, 나도 당신을 버릴 수 없소.”

 

이안눌은 김지사의 딸에게 손을 내밀었어요. 이안눌은 김지사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어요. 그리고 열심히 공부했지요. 늘 그렇듯 책을 만 번씩 읽었어요. 그래서 28세에 문과에 급제한 후 부제학과 예조판서도 지냈어요. 결혼도 하고 과거에도 붙었으니 다리밟기에서 소원을 빈 것이 모두 이루어진 것이지요.
중구 필동의 동국대학교 안에는 ‘동악선생시단’이라고 새겨진 큰 바윗돌이 있어요. 동악 선생이 바로 이안눌이랍니다. 

▲동학선생시단
▲동학선생시단

 


/자료 제공: ‘청계천 다리에 숨어 있는 500년 조선 이야기’(김숙분 글ㆍ정림 그림ㆍ가문비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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