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만일 누군가의 생활을 알고 싶다면, 가장 빠른 방법은 은행이나 신용카드 회사의 컴퓨터에 저장된 거래 기록을 조사하는 거야. 특히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보면, 그 사람이 주로 어떤 식당을 다니고 어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어떤 취미를 즐기는지 알 수 있어. 

실제로 아마존처럼 전 세계적으로 운영되는 온라인 쇼핑몰 회사는 고객의 거래내역에 대한 자료를 꼼꼼히 관리해. 이 자료를 인공지능이 분석해서 고객이 아마존 누리집을 찾아올 때마다 첫 화면에 좋아할 만한 상품을 보여 주는 거야. 평소 자동차 관련 용품을 많이 사는 사람이 아마존을 클릭하면 신차 광고가 뜨는 것을 볼 수 있을거야. 그런데 자신이 어디에 어떻게 돈을 쓰는지가 훤히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 개인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지. 자유를 지키는 데 민감한 사람들은 역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기도 해. 여자가 남자와 동등하게 교육 받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자유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저항한 사람들 덕분이니까. 이들은 개인이 정부나 권력자의 감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지. 
1989년 새로운 전자화폐를 개발한 데이비드 차움도 자유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어. 그는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현금 대신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어.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카드 회사의 컴퓨터에 개인의 카드 사용 내역이 차곡차곡 저장된다는 사실이 아주 불편했지. 
자신이 성형했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은 아이돌 스타가  있다고 상상해 봐. 기자들에게 성형을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있지만, 몇 년 동안 성형외과를 다니며 카드로 병원비를 지불한 기록을 지울 수는 없어. 누군가 이런 기록을 보고 수술하기 전 사진을 찾아내 폭로한다면 얼마나 힘들까? 성형을 한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많은 팬들이 떠나고 말 거야. 차움은 개인의 사생활을 추적할 수 있는 컴퓨터 시스템이 사람들을 교묘하게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 현금을 쓸 때는 추적할 수 없었던 사생활이 신용카드 사용 추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막고 싶었던 거지. 또 정부처럼 힘이 센 조직이 기록을 들여다 보며 개인의 활동을 제한하려 든다면, 누구도 맞서기 어려울 것 같았거든. 그래서 컴퓨터에 사용기록이 남아도 누가 쓴 것인지를 비밀로 유지할 수 있는 전자화폐를 만들려고 했어.

차움은 암호학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였어. 암호란 비밀을 일부 사람들에게만 공개하는 숫자나 기호를 뜻해. 특정한 숫자나 기호로 된 암호를 모르는 사람들은 암호가 걸려 있는 정보에 접근할 수 없지. 차움은 전자화폐에 암호 프로그램을 적용해야겠다고 생각했어. 암호를 아는 사람끼리만 화폐를 주고받고, 기록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어. 노력 끝에 그는 최초의 암호화폐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지. 
차움이 개발한 암호화폐는 신용카드나 다른 전자화폐와 달리 돈을 쓰는 사람의 비밀을 철저하게 보장해 줘. 마치 현금을 쓸 때처럼 암호화폐를 쓰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말이야. 
점심을 먹고 식당 계산대에서 암호화폐로 음식 값을 내면 식당 컴퓨터는 은행 컴퓨터에 접속해 그 화폐가 진짜인지를 확인하지. 지금 돈을 쓰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비밀로 유지되고 암호화폐가 진짜인지만 확인하고 계산이 끝나는 거야. 현금을 지불할 때 가게 주인이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지. 

그런데 차움의 생각과 달리 사람들은 암호화폐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거래내역을 추적당할 수도 있고, 연회비 같은 수수료도 내야 하는데도 말이야. 그 이유는 신용카드가 있으면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어서 편리하고, 일단 카드 회사에서 돈을 미리 내 준다는 점이 좋았기 때문이야. 물론 카드 요금이 청구되는 날까지는 갚아야 하지만. 차움의 아이디어는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거였어. 당시는 20세기였고, 컴퓨터 화면에 숫자로만 나타나는 암호화폐를 돈으로 믿어 주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지. 화폐는 가치를 믿어 주는 사람들이 많을 때만 쓰일 수 있는데 그러지 못했던 거야. 
차움의 암호화폐가 널리 쓰이지 못한 원인에는 기술적인 문제도 있었어. 자신의 은행 계좌의 현금을 암호화폐로 바꾸어 상점의 계좌로 옮겨 돈을 지불하려면 컴퓨터가 필요해. 하지만 식당이나 백화점에서 암호화폐로 계산하기 위해 컴퓨터를 가지고 다닐 수 없었지. 당시에는 스마트폰처럼 누구나 들고 다닐 수 있는 초소형 컴퓨터가 없었거든. 암호화폐를 현금 주고받듯이 편하게 쓰려면 인터넷 통신 속도가 끊김 없이 빨라야 하는데, 그 기술도 부족했어. 암호화폐를 위한 프로그램은 개발되었지만, 프로그램이 잘 돌아가도록 도와주는 기술은 뒷받침되지 못했던 거야.

/자료 제공=‘교양 꿀꺽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은 왜 필요할까?’(유윤한 지음ㆍ이진아 그림ㆍ봄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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