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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개 청계천 다리에 숨어 있는 500년 조선 이야기 - 거지들의 보금자리 ‘청계천 다리밑’

2024-08-21     정준양

한 남자가 포도청으로 끌려왔어요. 그 사람은 도둑질을 하다 잡혔어요. 포졸들은 그 사람을 억지로 눕혔어요. 죄인의 머리맡에서 한 사람이 여러 개 묶은 바늘로 그의 이마를 찌르기 시작했어요. 죄인은 너무 아파 소리를 질렀어요. 포졸들은 상처 난 자국에 먹물을 넣었어요. 이마에 검은 글씨가 나타났어요. 그 사람의 죄를 이마에 글로 써넣은 것이지요. 
살을 바늘로 찌른 후 먹물로 새겨 넣는 것을 문신이라고 하지요. 조선 시대에는 이처럼 죄를 지어 잡히면 이마에 문신을 새겼어요. 이와 같은 형벌을 ‘자자형(刺字刑)’ 이라고 했어요. 
사람들은 자자형을 받은 사람을 ‘경을 친 놈’ 이라며 욕하고 따돌렸어요. 문신이 모두 새겨지자 포도청에서는 죄인을 내보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은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장사를 하려 해도 사람들은 사지 않았고 심지어 집안에서조차도 제사에 참석시키지 않았어요. 그리고 포졸들은 다시 죄를 저지를까 봐 항상 감시했어요.
서울에는 그런 죄인들이 많았어요. 사람들의 차별을 이겨 내지 못한 죄인들은 청계천 다리 밑으로 모여들었어요. 주로 광교, 혜정교, 수표교, 복청교 아래였어요. 다리 밑은 비와 바람이 몰아치지 않는 그들만의 자유로운 보금자리였어요. 나라에서 청계천에 쌓인 흙을 거두어 오간수문 근처에 모아 두었는데, 더러는 그곳에 움막을 치고 살기도 했어요. 
다리 밑 거지들은 할 일이 참 많았어요. 잔치가 있거나 사람이 죽으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정신이 없지요. 그러면 주인은 다리 밑 거지들에게 문을 지켜 달라고 부탁했어요. 다리 밑 거지들 덕분에 잔칫집이나 초상집의 일이 무사히 끝나곤 했어요. 그러면 주인은 거지들에게 헌 옷과 돈을 주었어요. 그리고 맛있는 음식도 나누어 주었지요. 그래서 거지들은 구걸을 다닐 때 ‘어디 잔칫집이나 초상집이 없나?’ 하며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렸어요.

점점 거지들은 할 일이 더 많아졌어요. 초상이 나면 상여를 메거나 죽은 사람의 혼을 부르는 일까지 거지들에게 돈을 주고 시켰어요. 상여 앞에서 악귀를 쫓기 위해 요령을 흔드는 방상수가 되면 돈을 듬뿍 받았어요. 그래서 포도청에서는 거지들에게 두목을 뽑으라고 지시했어요. 거지들을 모두 불러내야 할 때 일일이 다리 밑을 돌아다니기 힘들었기 때문이지요.
거지들은 자신들의 두목을 ‘꼭지’라고 불렀어요. 꼭지들은 까치, 부엉이, 갈매기, 독수리 등 자신의 별명을 지었지요. 광교 아래에는 ‘광교 꼭지 까치’, 수표교 아래에는 ‘수표교 꼭지 갈매기’가 있었어요. 꼭지들은 모여서 총 두목을 뽑았는데 그 우두머리를 ‘꼭지딴’이라고 불렀어요. 꼭지딴은 청계천에서 거둔 흙으로 만들어진 조그만 산에서 살았어요. 그 산을 ‘조산’이라고 불렀는데, 을지로6가에 있었지요. 거지들은 자신들의 꼭지를 극진히 모셨어요. 거지들은 구걸을 해 와서 꼭지에게 밥상을 차려 주었지요. 이제 포도청에서는 꼭지딴에게만 명령하면 금세 다리 밑 거지들에게 전해졌어요. 자자형을 받은 거지들은 그들이 모여 사는 청계천 다리 밑이 소중한 보금자리였어요. 그저 이리저리 떠도는 거지들도 많았으니까요. 그런 거지들은 병이 들어 길에서 죽곤 했어요. 조선 시대에는 이런 시체를 버리는 곳이 따로 있었어요. 바로 광희문 밖이었어요. 그들의 시체를 광희문 밖으로 얼른 치우는 일도 다리 밑 거지들의 중요한 일이었어요. 영조는 자자형을 받은 거지들을 불쌍하게 여겼어요. 얼굴에 지워지지 않는 글씨를 새겨 넣는 것은 잔혹한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자자형을 내리지 말라고 명령했어요.
자자형 거지들은 오랫동안 청계천 다리 밑을 떠나지 않았어요. 새해가 되면 꼭지들은 새해 인사를 하러 부잣집을 찾아다녔지요. 문 앞에서 큰 소리로 이렇게 주인을 불렀어요.
“광교 꼭지 까치, 문안 여쭈오!”
그러면 주인어른은 떡국 상도 차려 주고 세뱃돈도 듬뿍 주었어요. 거지들은 배부르게 잘 먹고 다시 청계천 다리 밑으로 돌아와 한숨 늘어지게 자곤 했지요.

/자료 제공: ‘청계천 다리에 숨어 있는 500년 조선 이야기’(김숙분 글ㆍ정림 그림ㆍ가문비어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