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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로 보는 한국사 이야기」이성계 찾아간 ‘정도전’ 병영 앞 소나무에 속마음 담긴 시 쓰다

2024-06-18     정준양

우왕 1년(1375년), 북원에서 사신이 왔어. 이인임은 사신을 맞이하려고 했지. 하지만 정도전ㆍ정몽주ㆍ이색 등 신진 사대부들은 이를 반대하고 나섰어. 선왕인 공민왕이 명나라를 섬기기로 했는데 이제 와서 원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거야. 
그때 친원 세력의 우두머리였던 경복흥은 정도전을 원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영접사로 임명해 버렸어. 그러자 정도전은 이를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지.
“저를 끝까지 영접사로 임명하시겠다면 북원 사신의 목을 베어 가지고 오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를 묶어 명나라로 보내겠습니다.”
결국 정도전은 경복흥과 이인임의 미움을 사서 전라도 나주 회진현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지.
그 뒤 귀양에서 풀려나 학문을 연구하며 제자를 가르쳤던 정도전은 우왕 9년(1383년) 가을의 어느 날 이성계를 찾아갔어. 이성계는 동북면 도지휘사로서 함경도 함주(함흥)에 진을 치고 있었단다. 당시는 왜구가 쳐들어와 충청도ㆍ전라도ㆍ경상도 일대를 휩쓸 때였어. 이성계는 왜구 토벌에 나서 왜구들을 크게 무찔렀지. 그는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어 난세를 구할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었어.
이성계는 정도전을 반갑게 맞이했어.
“어서 오십시오. 어인 일로 이 먼 길을 찾아오셨습니까?”
“장군님을 뵈러 왔지요. 세상에는 많은 인물들이 있지만 장군님만 한 분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정도전은 고려 왕조가 썩을 대로 썩었다며 이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새 나라를 세우려면 백성들의 신망을 얻는 이성계 같은 인물이 필요하기에 그를 만나러 왔던 거야.
이성계는 정도전과 대화를 나눈 뒤 자신이 거느린 병사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어. 정도전은 찬찬히 바라보다가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지.
“정말로 훌륭합니다. 이런 군대라면 무슨 일이든 못하겠습니까?”
“무슨 일이라니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이성계는 짐짓 모르겠다는 듯 그렇게 물었어. 정도전은 껄껄 웃으며 적당히 둘러댔지.
“하하, 왜구를 물리치는 일 말입니다.”
그러나 정도전은 속마음을 감추지 않았어. 이성계의 군대가 주둔한 병영 앞에는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단다. 정도전은 갑자기 소나무에게 다가가더니, 품속에서 단도를 꺼내 소나무 껍질을 벗겨 냈어. 그러고는 소나무 위에 자신의 속마음이 담긴 시를 썼어.

 

아득한 세월에 한 그루 소나무
몇만 겹 푸른 산속에서 자랐구나.
다른 해에 다시 만나 볼 수 있을까.
인간 세상 굽어보다가 큰 발자취를 남기리니.

이 시는 이성계를 늙은 소나무에 비유한 작품이야. 때가 되면 이성계는 위업을 이루고 인간 세상에 큰 발자취를 남길 것이니 자신과 손잡고 큰일을 하자는 뜻을 담았단다. 두 사람의 만남은 새 역사를 펼치는 만남이었어. 정도전은 이성계의 참모가 됐으며,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자 그를 도와 조선을 세웠지.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해 개국 공신이 되었던 거야.

▷태조 이성계의 무덤인 건원릉은 왜 봉분에 잔디가 아닌 억새가 심어져 있죠?

조선 왕조 최초의 왕릉인 건원릉.

태조 이성계는 나고 자란 곳이 함경도 함흥이야. 그는 늘 고향을 그리워했으며, “내가 죽으면 함흥 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했지. 하지만 아들 태종은 아버지의 유언을 따를 수가 없었어. 함흥은 한양 도성에서 까마득히 먼 곳이었거든. 그렇다고 유언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 고민 끝에 고향에서 흙과 억새를 가져와 무덤의 봉분을 만들기로 했지.
 

/자료 제공=‘식물로 보는 한국사 이야기 ① 고조선부터 고려까지’(신현배 글ㆍ김규준 그림ㆍ뭉치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