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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로 보는 한국사 이야기」천년 왕국 신라는 숯으로 망했다?

2024-04-23     정준양

신라 제2대 남해왕 때 석탈해라는 젊은이가 있었어. 그는 인물도 좋고 꾀가 많았지.
어느 날 탈해는 머슴 둘을 데리고 지팡이를 끌고 토함산에 올라갔어. 그는 산꼭대기에 돌집을 짓고는, 7일 동안 거기서 지내며 서라벌을 두루 살펴보았어. 
그런데 마침 초승달 같은 언덕에 자리 잡은 집이 눈에 띄었어. 표주박을 허리에 차고 일본에서 건너와 신라 왕 박혁거세의 신하가 된 호공이란 사람의 집이었어. 탈해는 그 집이 마음에 들었어. 그래서 그 집을 빼앗을 궁리를 하고 머슴들에게 말했지.
“오늘 밤에 몰래 저 집으로 숨어 들어가서 마당에 숯과 숫돌을 묻어 놓도록 해라.”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날 밤 머슴들은 호공의 집안 사람들이 잠든 틈을 타 담장을 넘었어. 그러고는 마당에 숯과 숫돌을 파묻고 돌아왔지. 이튿날 날이 밝자 탈해는 호공의 집을 찾아가서 말했어.
“집을 비워 주셔야겠습니다. 이 집은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온 집입니다.”
탈해의 요구에 호공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집은 내 집이야. 허튼소리 말고 썩 물러가라.”
“아닙니다. 조상 때부터 살아온 집입니다. 억지 부리지 말고 집을 돌려주십시오.”
탈해와 호공은 서로 자기 집이라고 우기며 옥신각신 싸웠어. 그러다가 두 사람은 결국 관가를 찾아갔지. 재판을 맡은 벼슬아치가 탈해에게 물었어.
“너는 그 집을 네 집이라고 우기는데, 그것을 증명할 수 있겠느냐?”
“물론이지요. 증거도 있습니다. 우리 집안은 조상 대대로 대장장이 일을 해서, 마당을 파 보면 그때 일하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벼슬아치는 탈해의 말을 듣고 머슴들에게 호공의 집 마당을 파 보게 했어. 그러자 과연 숯과 숫돌이 나왔어. 탈해는 헛기침을 하고 호공에게 물었단다.
“어떻습니까? 이래도 자기 집이라고 우기시겠습니까?”
“허허, 그것 참…….”
호공은 꼼짝 없이 탈해에게 집을 내주어야 했어. 
당시는 신라 제2대 남해왕이 백성들을 다스릴 때였어. 남해왕은 탈해가 영특하다는 소문을 듣고 탈해를 궁전으로 불러들였어. 그러고는 탈해를 맏공주와 결혼시켜 사위로 삼았지. 뒷날 탈해는 남해왕의 아들인 유리왕에 이어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단다. 
이 이야기에 나와 있듯이 신라에는 숯이 있었어. 나무로 구운 숯을 제철의 연료로 사용했지. 1000도가 넘는 온도에서 쇠를 녹이려면 숯 같은 질 좋은 고급 연료가 필요했거든. 숯은 장작에 비해 불순물이 적고 발열량이 높아 숯 없이는 쇠를 녹일 수 없었대. 우리나라에서는 2600년 전부터 숯을 이용하기 시작해, 철 생산을 하여 본격적인 철기 시대를 열 수 있었어.
『삼국사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어. 신라 제49대 헌강왕이 어느 날 신하들을 데리고 월상루에 올랐어. 헌강왕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시중 민공에게 물었지.
“지금 민간에서는 기와로 지붕을 덮고 짚으로 잇지 않으며, 나무 장작 대신 숯으로 밥을 짓는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대왕마마께서 즉위하신 뒤로 태평성대를 이루어 해마다 농사가 풍년입니다. 백성들이 잘살게 되어 거리에는 기쁨이 가득합니다.”
당시에 신라의 수도 서라벌은 민가가 10만 호에 이르렀어. 그 많은 사람들이 나무 장작 대신 숯으로 밥을 지었다고 하니 숯의 소비가 얼마나 많았겠니? 
숯은 나무를 태워서 만든 탄소 덩어리야. 숯가마에 나무를 넣고 공기를 막아 열을 가하면 숯이 나오지. 신라 때는 숯의 원료로 참나무를 사용했어. 참나무로 만든 숯을 ‘참숯’이라 하는데, 단단하고 열량이 높아 인기가 많았지. 숯은 원료가 된 나무의 10분의 1에 불과하단다. 그런데 신라 때 숯이 산업용뿐 아니라 가정용으로 널리 쓰였으니 숯의 원료가 되는 참나무가 얼마나 많이 베어졌겠니? 서라벌 근처에 있는 참나무 숲이 모조리 파괴되었지. 참나무의 열매인 도토리는 백성들이 흉년에 먹는 소중한 구황 식물이야. 참나무 숲이 사라져 민둥산이 되었으니 가난한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어. 민심은 더 흉흉해지고 신라는 멸망의 길로 치달았지. 그래서 ‘천년 왕국 신라는 숯으로 망했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단다.


탄천은 물빛이 숯처럼 검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요?
탄천(炭川)은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 청덕리 수청동에서 발원하는 한강의 제1지류야. 길이 35킬로미터로, 북쪽으로 흘러 판교와 분당을 거쳐 서울시 송파구와 강남구를 가르며 한강으로 흘러들지. 우리말로는 ‘숯내’라고 하는데, ‘탄천’은 물빛이 숯처럼 검다고 붙여진 이름이야.
이 하천을 ‘탄천’이라 부르게 된 데는 몇 가지 유래가 전해지고 있어. 첫째는, 조선 시대에 한양으로 공급하는 숯을 탄천 부근에서 만들었기에 하천이 검은빛을 띠었다는 거야. 실제로 숯 굽는 마을인 숯골이 있어, 지금의 성남 경찰서 근처를 아랫숯골, 성남시 태평동ㆍ신흥동ㆍ수진동 일대를 윗숯골이라 불렀다고 해.
둘째는, 이곳에 자주 홍수가 일어나 농민들이 탄식하는 하천이라고 ‘탄천(嘆川)’이라 불렀는데, 한자가 바뀌어 ‘탄천(炭川)’이 되었다는 거야. 
셋째는 성남시 하대원동 태조사 부근에 묘가 있고, 탄천에 은거하며 독서를 일삼았다는 조선 태종 때의 문신 이지직과 관련된 설이야. 이지직은 호가 ‘탄천(炭川)’인데, 그의 호를 따서 붙여 ‘탄천’이 되었다는 거지. 넷째는 저승사자가 동방삭을 잡으려고 이곳에서 숯을 씻었다고 하여 ‘탄천’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지. 

/자료 제공=‘식물로 보는 한국사 이야기 ① 고조선부터 고려까지’(신현배 글ㆍ김규준 그림ㆍ뭉치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