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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로 보는 한국사 이야기」소나무를 많이 심으면 삼한을 통일할 왕이 태어난다?

2024-04-09     정준양

고려를 세운 왕건의 조상 가운데 호경이란 사람이 있었어. 그는 백두산 기슭에 살았는데 힘이 세고 활을 잘 쏘았어. 
어느 날 호경은 한반도의 아름다운 땅을 두루 구경하고 싶어졌어. 그래서 백두산을 떠나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지. 호경은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정착하려고 했어. 그런데 경기도 개성 땅에 이르러 부소산(지금의 송악산)에 오르니 경치가 마음에 들었지. 그리고 마을로 내려가 그 주위를 둘러보니 땅이 기름지고 자손대대로 복을 받을 만한 명당 자리였단다. 호경은 여기에 터를 잡아 살기로 하고 부소산 기슭에 집을 지었어. 그러고는 마을 처녀를 아내로 맞아들여 행복하게 살았어. 자식이 없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걱정이 없었지. 
하루는 호경이 마을 사람들과 평나산으로 사냥을 갔다가 날이 저물었어. 깊은 산속이어서 민가도 눈에 띄지 않았지. 그래서 굴속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어.
그런데 얼마나 잤을까? 이들은 산을 뒤흔드는 울음소리를 듣고 잠이 깼어. 호랑이 울음소리였어. 그때 한 사냥꾼이 말했어.
“저 호랑이는 굶주린 호랑이가 틀림없소. 우리 가운데 누군가 한 사람이 호랑이 밥이 되어 줍시다. 그래야 나머지 사람들이 살 수 있을 거요.”
“누가 호랑이 밥이 될지는 호랑이에게 맡깁시다. 각자 쓰고 있는 모자를 벗어 굴 밖으로 던져, 호랑이가 물어 올리는 모자 주인이 호랑이 밥이 되는 거요.”
굴속에 있는 사람은 모두 열 사람이었어. 이들은 모자를 벗어 각자 굴 밖으로 던졌어. 그러자 호랑이는 호경의 모자를 덥석 물어 올렸어. 호경은 주먹을 불끈 쥐고 굴 밖으로 나왔어.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굴이 와르르 무너졌어. 굴 안에 있던 사람들은 바위와 흙더미에 묻혀 버렸지. 
호경이 정신을 차려 보니 호랑이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어. 그제야 호경은 자신이 호랑이 덕에 목숨을 건졌음을 깨달았단다. 마을로 내려온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사고 소식을 알렸어. 호경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사냥꾼들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기에 앞서, 산신에게 정성껏 제사를 지냈어. 그러자 산신이 호경 앞에 나타났지. 
“놀라지 마세요. 나는 이 산을 다스리는 산신인데, 여자의 몸으로 혼자 살아왔어요. 그대를 동굴에서 구한 것도 바로 나였어요. 그것은 그대와 부부의 인연을 맺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나와 결혼하여 이 산의 대왕이 되어 주세요.”
산신은 이렇게 말한 뒤 호경을 업고 연기처럼 사라졌어. 마을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호경을 ‘대왕’이라 부르며,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 주었어. 그리고 평나산은 아홉 사람이 한꺼번에 죽었다 하여 ‘구룡산(九龍山)’으로 이름을 바꾸었지.
호경은 이 산의 대왕으로서 산신의 남편이 되었지만, 집에 있는 아내를 잊을 수 없어서 밤마다 몰래 찾아와 같이 지내다 오곤 했지. 그러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어. 호경은 크게 기뻐하며 아들에게 ‘강충’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어. 그는 훌륭한 젊은이로 자라나 부잣집 딸인 구치의와 결혼해 두 아들을 얻었어. 큰아들이 이제건, 둘째 아들이 손호술(강보육)이었지. 강충은 부소산 북쪽에 살았는데, 신라의 이름난 지관인 팔원에게 이런 말을 들었어. 부소산 남쪽으로 옮겨와 살며 소나무를 많이 심으면 삼한을 통일할 왕이 태어난다는 것이었지. 그래서 강충은 부소산 남쪽으로 이사하여 온 산에 소나무 숲을 만들고, 부소산을 송악산이라 불렀어. 부소군도 송악군(지금의 개성)으로 이름을 바꾸었지. 이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단다. 강충의 후손들 가운데 왕건이 태어나서 고려를 세우고,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했으니 말이야.


최치원은 신라를 ‘누런 나뭇잎’, 송악을 ‘푸른 소나무’라 말했다면서요?
고승 도선은 왕건의 탄생을 예언한 것으로 유명하지. 신라 헌강왕 2년(876년) 4월의 어느 날, 왕건의 아버지 왕륭이 송악 땅에 새집을 지었어. 이때 도선 스님이 그 옆을 지나가다가 집 짓는 광경을 보고는 집터를 다시 잡으라고 말했어. 그러고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이름을 ‘왕건’이라 하라고 했지.
왕륭은 도선 스님이 시키는 대로 큰 집 서른여섯 채를 지었어. 그러자 스님의 예언대로 다음 해에 아기가 태어났어. 왕륭은 기뻐하며 아기 이름을 ‘왕건’이라 지었지.
뒷날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일 년 뒤에 도읍을 송악으로 옮겼을 때 경주 금오산에 있던 최치원은 이런 구절이 담긴 편지를 보냈어.

계림은 누런 나뭇잎이요, 곡령은 푸른 소나무로다.

계림은 신라이고, 곡령은 송악이야. 이 말은 신라가 누런 나뭇잎으로 쇠락할 것이고, 송악을 도읍으로 정한 고려는 푸른 소나무로 강성해진다는 거지. 앞날을 내다보는 능력이 있는 최치원의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단다.

/자료 제공=‘식물로 보는 한국사 이야기 ① 고조선부터 고려까지’(신현배 글ㆍ김규준 그림ㆍ뭉치 펴냄)